나의 고향은 영천이다. 어머니는 아직 고향에 계신다. 그곳에서 열여섯까지 살다가 열일곱부터 40대 중반의 지금까지 줄곧 대구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영천 사람이오? 대구 사람이오?"라고 묻는다면, 더 나아가 영천과 대구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독자들께 물어본다. 어이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기가 차서 누군가에게 동의를 구하는 심정이라고 보면 된다.
경상도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에서 펼쳐지는 곰과 사자의 야구경기에서 사자를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그런데 누군가 서울에 살면서 왜 곰을 응원하지 않고 사자를 응원하느냐고 화를 낸다면, 더 나아가 그렇게 사자가 좋으면 경상도에 가서 살라고 한다면, 독자들께서는 이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한국 학생이 있다. 미국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한 미국 친구가 "이렇게 냄새 나는 김치를 왜 먹느냐? 우리와 빨리 친해지고 싶으면 이 쓰레기 같은 김치를 먹지 마라"고 한다면 독자들께서는 흔쾌히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제 똑같은 예를 뒤집어서 들어보자.
나의 고향은 중국 안도현이다. 한국에서 10년째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한국 사람이오? 중국 사람이오?" 중국과 축구를 하면 "왜 한국을 응원하지 않느냐?"며 다그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늘 결론은 "이 사람 같은 민족이라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짱개'네"라며 비하한다.
나는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나의 종교는 이슬람교이고 내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확고한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회식 문화에는 삼겹살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버릇처럼 "블랑카, 한국에 빨리 적응해서 돈을 많이 벌려면 이 삼겹살을 먹을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한다. 먹기를 거부하면 욕도 서슴지 않고 강제로 먹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이 프랑스 새 정부의 장관이 되었다고 기뻐한다. 또한 한국계의 미국 시장이나 군 장성, 세계적 명문대학의 교수나 서구에서 명성을 날린 예술가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역으로 필리핀 이주여성이 국회의원이 된 것에 대해, 베트남 이주노동자 출신이 나의 군 상급자나 직장 상사, 더 나아가 내가 사는 시의 시장이 된다면 당신은 추호도 편견 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우리들 속에 대상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교활한 이중 잣대가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은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열린 자세를 가진다면 다문화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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