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날, 우리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 '소통'의 중요성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지만 역사와 문화 분야에서 우리의 설명과 해설 방식은 오래전에 고정화된 채 변함없다. 이런 고정화된 설명 문화 속에서 우리는 지난날 우리의 치열했던 삶의 사연과 그런 스토리에 대해서는 잊고 산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구시내 곳곳의 사연과 모습들을 시적(詩的) 감상으로 스케치한 시집 한 권이 서울의 대구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의 큰길, 뒷길의 사연과 추억, 그리고 그런 옛 사연 위에 핀 오늘의 모습을 문학적 정취로 스케치한 시적 리포트라 할 그 글이 서울의 대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향 떠나 외지에 나와 나이 먹고 있던 이들이 그 글을 우연히 보고, 옛 추억의 끈끈한 감회에 잠시 젖으며 고향모임자리 곳곳에서 새삼 대구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다들 "이런 시집도 있구나"라고 입을 모았다. 바로 오정미 시인의 시집 '젊은 골목길'이다.
젊은 시인이 대구의 큰길, 작은길을 개인적 정취로 혼자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길들에 얽힌 어제의 사연, 오늘의 모습들을 하나씩 짚은 것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서울의 대구 사람에게는 '기특한' 마음을 들게 하고 작지만 오래가는 감동을 준다. 마치 그곳들의 사연을 적은 기념 시비(詩碑) 하나씩을 그 길에 세워 준 것 같았다. 그래서 큰길, 작은길들을 스토리가 있는, 우리들의 길로 재탄생시켰다는 느낌을 준다.
시(詩)는 항상 차원 높은 것일 필요는 없다. 초고속 변화의 시대에 우리들에게 잠시 정서적 여유를 갖게 해주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와 닿는, 그런 '쉬운 시'도 좋지 않을까.
도깨비시장-외제물건 골목
오리지날/ 미제는 똥도 좋다는 시절이 있었다네/
비누, 화장품, 과자, 옷, 수건 /없는 것 빼고 다 있네/
보따리 장사 힘차게 뛰던 곳/…/ 어디서나 50년을/ 함께 만난다
잊고 사는 주변 길에 얽힌 사연들을 저널리스틱한 시각과 시적 감흥으로 찾아본 그런 자료, 그런 시집이다. 각박한 사회 정서, 단문단답의 SNS 소통시대에 더욱 반갑다. 우리들을 정겨운 이웃 사랑, 고향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또 하나의 매체가 된다.
그 시집 '젊은 골목길'은 또한 시인의 향토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우리 고장 큰길, 작은길의 다양한 특징과 사연에 관한 끈끈한 추억과 자랑들을 이제 운치 있게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워주는 각성제이기도 하다.
그렇다. 지금은 '스토리 시대'다. 관광도 '스토리 관광 시대'라고 말한다. 관광은 유적 유물, 명소 등 '보여주기 프로그램'만으로는 이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즉 '하드웨어 관광'에서 '스토리 관광'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오정미 시인의 '젊은 골목길'은 그 해법 가운데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광은 이제 더 이상 '내국인용'과 '외국인용'에 따로 구분이 없다. 내국인 즉,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귀하게 여기고, 뜻 깊게 생각하고, 찾아보고 하는 곳이 동시에 외국인의 관심거리가 되고 관광거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대구경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화려한 신라문화의 본고장,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교문화 즉,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유교-선비문화의 고장이었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 대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드라마틱한 발자취와 '스토리'를 갖고 있는 한국현대사의 고장이다. 그야말로 스토리 관광의 보고다.
우리 고장 대구의 역사와 문화, 다채로운 사연, 생활 스토리, 그것은 이제 이 지역 사람들만의 로컬 스토리가 아닌, 모두가 간직하고 내보여야 할 한국 역사문화의 한 장이며, 관광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제 대구는 특별한 역사문화적 이미지, 이를 이끌고 뒷받침할, 한 단계 높은 자료, 문학적 정취와 저널리스틱한 안목으로 정리한 수준 높은 자료들을 내어 놓는, 스토리 관광의 선두가 되어야 한다.
강형석/전 문화공보부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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