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어쨌든 국민은 통쾌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강공이다. 10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일왕이 한국 방문을 하고 싶어 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할 거면 오라"고 했다.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추임새도 있었다. 독도경비대원들에게는 "독도는 진정한 우리의 영토이고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11일 새벽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일본을 2대0으로 꺾고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땄다. 대표팀의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승리의 뒤풀이를 펼쳤다.

이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뒤늦었지만 당연하다. 독도 방문에 대해 이 대통령은 즉흥적이 아니라 2, 3년 전부터 생각한 것이고 부작용도 검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에서는 자국 대사 소환에다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 중이다. 일왕과 관련해서는 외무성이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언론은 '예의를 잃었다'며 '한일관계가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패전일인 15일 아침에는 현 집권당인 민주당 각료로는 처음으로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각료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고 치졸한 변명을 했다.

독도에 대해 생떼를 부리고,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전범(戰犯)을 추모하는 저들의 수작은 익히 알던 바여서 말할 가치도 없다. 누가 예의가 없는지는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오히려 이해 못 할 바는 일부 국내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성적은 별로다. 찬반양론이야 있지만 4대 강 사업, 대북정책이 실패했고, 과도한 편중 인사에다 친형을 비롯한 측근이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또 집권 초기부터 야당과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 시민단체의 비판 표적이 됐고, 국민의 지지도 형편없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정부의 소극적이고 미지근한 태도를 비판했다. 대통령의 직접 방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연일 성토다. 정권 말기에 인기를 끌려는 얄팍한 술수, 같은 당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 뻔히 보이는 한일관계 악화를 무시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란다.

정치적으로 적(敵)인데다 그동안 미운 짓을 많이 해, 어떤 짓을 해도 다 밉다는 식이다. 야당의 한 대선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도를 폭파하자고 했다"며 정치 공세를 하고, 한 야당 의원은 박종우의 메달 박탈을 독도 방문이라는 대통령의 어리석은 행동이 IOC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판을 위한 머리 굴리기가 참으로 가소롭다.

이번 사태의 후폭풍은 분명히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독도 방문만으로 충분했을 것을, '신바람이 난' 이 대통령이 예정도 없는 일왕의 방한 문제까지 꺼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쯤이면 한일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우리 스스로 떠들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이번 독도방문을 통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동안 '우리 땅이면서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울분'을 풀어줬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적 파장이나 해석 따위를 몰라서가 아니다. 심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국가 경영은 늘 냉철하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예상해 대책을 철저하게 세운 뒤 실행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답답해하는 국민에게 한 번쯤은 이런 통쾌함을 줄 필요도 있다. 뒷일은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저 피상적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고 감정에 치우쳐 손뼉치는 머저리라고 욕을 해도 좋다. 궁지에 몰린 정치적 입지에서 벗어나려고 꼼수를 부린 것이라 해도 좋다. 통쾌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부터 정부와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일관계를 꼬이게 한 대통령을 원망해라. 다만 속으로 욕해라. 모처럼 업(Up)되어 있는 국민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또 누가 보면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보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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