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人格 國格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농담 내기를 했는데, 태조가 먼저 무학을 바라보며 "대사는 꼭 돼지 같소"라고 하자, 무학이 "대왕은 정말 부처님 같습니다"고 응수한 것이다. 태조가 정색을 하며 "그게 무슨 농담이냐"고 묻자, 무학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이는 법이지요"라고 해 절대 권력자인 이성계에게 한판승을 거뒀다는 얘기다.

세상살이란 이렇듯 거친 대응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상대방을 비판하는데도 최소한 지켜야 할 품격이 있고, 고수(高手)일수록 외유내강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극단적인 이념주의자들이 쏟아내는 거친 언어들과, 명색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천박한 언행을 보면 인격과 품격이 실종된 막가는 사회를 방불케 한다.

우리는 국회에서 '공중부양'을 연출한 전직 국회의원이 진보정당 혁신을 이끌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여성 아나운서 성적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정치인이 TV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현직 부장판사와 현역 대위가 대통령을 '가카새끼'로 부른 나라에 살고 있다.

야당 원내대표가 "목포 역전에서 할복하겠다"며 검찰과 국민을 협박하는 나라, 주폭(酒暴) 척결에 나선 경찰과 법원에 대해 "파출소 가서 깽판 좀 부렸기로 뭐가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 의원이 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지난 4'11 총선 이전에 특히 명성(?)을 날렸던 '나꼼수'의 막말 파문은 차라리 포르노 수준이었다. 저속한 미디어가 되기를 작정한 이들이 백주대로를 활개치며 불만과 냉소주의를 충동질하고 사회의 품격을 도색화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서울법대를 나온 야당 최고위원이 여권의 유력대권 후보에게 '그년'이라는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민노총 행사의 막말 파문과 종북성 발언이 또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정치, 언론, 법조, 학계를 가리지 않고 소위 '나꼼수'의 아류를 자처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상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한류를 수출하는 이 나라의 국격(國格)과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이루어낸 스포츠 국력이 차마 무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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