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범죄 속수무책… 나는 '알바' 입니다

악덕 사장에 몹쓸 짓 당해도, 잘릴까 두려워 대응도 못해

대학생 서모(25'여'대구 수성구 황금동) 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학력정보와 전화번호를 적은 전단을 전봇대에 붙였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 서 씨는 전단을 봤다는 한 중년 남자와 상담통화를 한 뒤 시범과외를 하기로 했다. 남자는 "아들이 학원에 갔다가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니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서 씨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이어 "한 시간 정도 함께 있으면서 해달라는 걸 해주면 10만원 이상 주겠다"고 말하면서 서 씨에게 손을 뻗었다.

서 씨는 깜짝 놀라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서 씨는 "그날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달 10일 충남 서산의 한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여대생 이모(23) 씨가 업주 안모(37)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통한 성범죄 노출=아르바이트를 주로 하는 청소년과 20대 초반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21일 수영장을 운영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오모(39)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 씨는 4월부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생 A(19) 양과 B(19) 양의 신체부위를 더듬은 혐의를 받고 있다. 오 씨는 남성 손님을 그러모아야 한다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게 한 뒤 업무를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신체부위를 수차례 만지며 괴롭혔다. 경찰조사에서 두 여학생은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성추행을 문제 삼으면 사장이 그만두라고 할까봐 두려웠다"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더는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오 씨를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인터넷포털 게시판에는 '아르바이트생인데 이러면 성추행인가요?' '아르바이트하다가 사장한테 당한 것 같아요'라는 글을 올려 성추행 성립 여부를 묻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자영업은 성범죄자 취업제한 사각지대=정부는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제도를 통해 성범죄자의 직업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성범죄자 취업제한제도는 어린이'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벌금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에 10년간 취업하거나 운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하지만 성범죄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고용주 대부분이 교육시설과 무관한 중소 자영업자이기 때문. 강제추행이나 성폭행 등 성범죄가 친고죄라는 점도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구 남부경찰서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형량이 가벼운 추행은 적은 합의금을 제시해도 피해자가 합의하는 경우가 많아 범행사실이 묻히거나 사건이 금방 종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구여성회 신미영 간사는 "아르바이트생은 정규직 근로자와 달리 제도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서 성희롱이나 성범죄 피해자이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서 "성희롱이나 추행을 당했을 때 여성단체나 경찰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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