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헌재,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포털 "환영" 속 "악성 댓글 어쩌나"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반드시 실명 인증을 해야 하는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반드시 실명 인증을 해야 하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24일 오전 대구시내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연예인 기사에 대한 댓글을 달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헌법재판소가 23일 '인터넷 제한적 본인 확인제(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게시판 등에 글을 올리는 이용자들에 대해 본인 확인을 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게시판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이용자들도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 한층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악성 댓글과 명예훼손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헌재 결정과 파장=인터넷 실명제는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에 인적 사항을 등록한 뒤 댓글 또는 게시글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2007년 7월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인터넷 공간에서 악성 댓글이 일으키는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국내 포털 게시판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는 않고 이용자들이 해외사이트로 도피했으며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다"며 이 제도가 공익 효과 없이 표현의 자유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실명제가 있지만 충격적인 악성 댓글 때문에 연예인이나 10대 청소년이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자 이의 실효성이 없다는 여론도 많이 일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해외 인터넷 서비스가 국내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실효성을 잃은 측면도 있다.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을 높이고,주민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이번 결정으로 인터넷 실명제의 효력이 상실됨에 따라 법률 개정 등 후속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털'누리꾼 '환영'=인터넷 실명제 도입 추진 단계부터 이를 반대했던 포털업체들은 헌재의 위헌 결정을 환영했다.

표면적으로는 실명제가 이용자의 표현상 자유를 위축시켰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의 규제 형평성 문제가 해소됐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을 반기고 있다.

포털업체들은 그동안 정부가 구글이나 유튜브 등이 댓글 기능을 없애는 방식으로 실명제를 거부해도 방치하면서 국내 사업자에게 이러한 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

국내 인터넷 관련 기업의 대표들이 속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위헌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하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던 요인이 이제라도 폐지돼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포털업계 선두인 네이버도 "인터넷상에서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의 규제 형평성 논란을 가져온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악성 댓글, 명예훼손 확산우려=이번 헌재 판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 공간에서의 악성 댓글과 명예훼손이 사회문제화하고 있는데 앞으로 부작용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것.

영남대 백승대 교수(사회학과)는 "헌재 결정의 핵심은 자기 책임성의 강화에 있다"며 "네티즌들이 양식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학교 및 사회에서 자기 책임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인터넷이 사회적으로도 책임성이 강화돼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무의미한 공간이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방통위는 "인터넷 게시글로 인한 명예훼손 등 분쟁 처리 기능을 강화하고 인터넷 사업자의 자율 규제를 활성화하는 등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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