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인도 인연의 씨앗된 60년 전 죽음

6·25 참전 인도인 나야 대령…전사·화장,범어동에 기념비

사진 인도 푸네시 비샵스쿨 학생들이 최근 나야 대령 기념비를 찾아 추모했다. 대구수성구청 제공
사진 인도 푸네시 비샵스쿨 학생들이 최근 나야 대령 기념비를 찾아 추모했다. 대구수성구청 제공
기념비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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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숨진 인도 출신의 우니 나야(Unni Nayar) 대령이 인도와 한국의 인연을 두텁게 하고 있다. 나야 대령은 6'25때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한국에 왔다가 1950년 8월 12일 경북 칠곡군 왜관 근처 낙동강전투에서 지뢰 폭발로 숨졌다.

그는 순직 후 8월 1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주일골(현재 KBS대구방송총국 남쪽 야산)에 화장됐고, 1950년 12월 7일 그를 기리기 위해 당시 조재천 경북도지사가 이곳에 기념비를 건립했다.

나야 대령과 수성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그러나 나야 대령은 죽어서도 인도-한국(수성구)과의 교류에 가교 역할을 했다. 1967년 10월 나야 대령의 미망인인 비말라 나야 여사가 남편의 넋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수성구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나야 여사는 19년 뒤인 1989년 5월 주한 인도 대사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으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이에 수성구청은 1996년 나야 대령 기념비 주변을 단장하고 보수 공사를 하는 한편 매년 현충일마다 나야 대령 기념비를 참배하고 있다. 또 2003년 9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나야 대령 기념비를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받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3일엔 나야 대령의 처조카인 비제이 남비아(Vijay Nambiar) UN사무총장 비서실장이 UN 가입 2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부인과 함께 나야 대령 기념비를 참배하러 왔다. 작년 10월엔 스칸드 타얄(Skand Tayal) 주한 인도 대사가 기념비를 찾으면서 수성구 나야 기념비는 한국을 방문하는 인도인들의 방문 코스가 됐다.

이런 차에 비말라 나야 여사가 지난해 숨지기 전에 남편의 기념비 곁으로 가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족들은 지난 4월 '90살이 넘도록 남편을 그리며 산 만큼 영혼이라도 함께 있게 해 달라'며 유언했다고 수성구청에 전하며 의사를 타진했다.

수성구와 나야 대령과의 인연은 개인 차원을 넘어 학교, 도시 간 인연으로 확대됐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 5월 인도 푸네시 비샵스쿨 학생 교류단 20여 명이 수성구 능인중을 찾아 교류활동을 벌였고 자매결연도 했다.

수성구청도 2010년 4월 푸네시에 우호교류를 제의한 뒤 2년 반만인 오는 11월 인도 푸네시와 우호교류협정을 체결하고 자매도시 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푸네시는 바로 나야 대령의 고향이다. 수성구청은 국제화재단에서 추천받아 우호교류를 하게 됐지만 푸네시가 나야 대령의 고향인지는 전혀 몰랐다는 것.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자매도시 협약을 맺은 도시가 바로 나야 대령의 고향이었다. 이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로 나야 대령과의 인연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 구청장은 "가창 한일우호관, 두사충 장군을 모신 모명재가 일본, 중국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가 된 것처럼 나야 기념비도 인도인을 위한 코스로 만들어 인도와의 인연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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