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한 코스모스는/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코스모스는/귀뚜라미 울음에도 수줍어지고/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코스모스 핀 가을 밤의 정취를 노래한 윤동주의 시다. 윤동주는 시 '코스모스'를 통해 고해성사 같은 마음을 드러냈다. 추억샘을 자극해 괜시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코스모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의 전령'이라는 별칭답게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를 지나면서 코스모스들이 앞다퉈 피어 나고 있는 것. 늦더위가 심술을 부리는 가을의 길목,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경남 의령의 코스모스 길을 다녀왔다.
◆자전거 길 따라 조성된 30리 꽃길
30리 꽃길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코스모스 길은 의령군 낙서면 율산리에서 여의리로 이어지는 낙동강 하구둑 위에 조성된 자전거 길이다. 두 대의 자전거가 넉넉히 지나갈 수 있는 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코스모스가 30리 이상(왕복 13㎞) 펼쳐져 있다. 코스모스 길은 올봄에 조성됐다. 의령군이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 조성 사업의 하나로 만든 것. 하지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며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휴가철 가볼 만한 국토종주 자전거 길 코스 20선'에 선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코스모스 길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까닭에 자전거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코스모스 길은 율산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커다란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놓은 코스모스 길 초입에 서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자전거 길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낙동강을 따라 활처럼 휘어진 자전거 길 위에는 코스모스 물결이 넘실댄다. 이 곳에 핀 크고 작은 코스모스는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파노라마 같은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기자가 코스모스 길을 찾은 날, 비가 내렸다. 비를 맞은 코스모스는 더욱 청초했다. 한껏 비를 머금은 하얀 코스모스와 분홍 코스모스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고개를 떨구었고,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꼿꼿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빨간 코스모스는 더욱 선명했다. 날이 좋으면 코스모스 길을 질주하려는 자건거 동호인들과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날씨가 궂어 찾는 이가 없어도 코스모스 길은 좋다. 코 끝을 자극하는 코스모스 향기에 취하고 한적한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길의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자전거보다는 도보 여행이 더 좋다. 자전거를 타고 코스모스 길을 질주하는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천천히 코스모스를 감상하며 오는 가을을 맞는 재미도 이에 못지 않다. 코스모스는 율산리에서 여의리로 갈수록 활짝 피어 있다. 길을 재촉할수록 가슴까지 올라 오는 코스모스의 물결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에 발품을 판 만큼 얻는 것도 많아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 등의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화장실의 경우 코스모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어 볼일이 급할 때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자전거 길인 만큼 자전거 대여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봤다.
◆의령이 낳은 3대 인물 탐방
코스모스 길 만으로 의령 여행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의령이 배출한 3대 인물의 흔적을 따라 가보는 것도 좋다. 의령에는 의병장 곽재우, 독립운동가 안희제, 삼성그룹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어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코스모스 길에서 이병철 생가로 길을 잡으면 중간에 안희제 생가와 곽재우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안희제 생가와 곽재우 생가는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번에 둘러 볼 수 있다.
안희제 선생은 1885년 부림면 입산리 속칭 설뫼 마을에서 태어났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된 생가는 안채·집사실·부속사 등으로 이뤄져 있다. 6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인 안채는 동쪽으로 마루·방·대청·부엌을 배치한 뒤 남향으로 1칸 마루를 둬 사랑방 구실을 하게 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여러 기능을 한 건물 안에 처리한 이 같은 배치는 조선후기 민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곽재우 장군 생가는 유곡면 세간리 현고수(천연기념물 제493호) 뒤편에 있다. '북을 매는 나무'라는 뜻을 가진 현고수(懸敲樹)는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를 침입하자 당시 유생이었던 곽재우가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집했다고 한다. 현고수에서 골목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 곽재우 생가가 나온다. 안채·사랑채·별당·곳간·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반가로 2005년 복원됐다. 생가 앞에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2호)가 수호신처럼 서 있다.
이병철 생가는 정곡면 중교리 장내마을에 있다. 1851년 건립된 일자형 평면 형태의 전통 한옥으로 이병철 회장이 결혼을 한 뒤 분가하기 전까지 기거했던 곳이다. 생가는 미륵산이라 불리는 야산을 등지고 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미륵산의 기가 모이는 곳에 생가가 자리 잡고 있어 지세가 융성하다는 것. 또 멀리서 흘러가는 남강의 물이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어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 탄생한 지역답게 마을에는 부자매점·부자떡 판매 등 '부자'라는 단어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기를 받기 위해 생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공영주차장이 조성되는 등 관광 명소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생가는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개방되며 월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가는 길
대구에서 코스모스 길을 가려면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가야 한다. 갈림길이 많을 뿐 아니라 코스모스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자칫 길을 놓치기 쉽다. 내비게이션 이용자는 율산마을을 목적지로 선정해서 길을 떠나야 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구 구마고속도로) 현풍IC~이방·구지 방면~달성2차산업단지 방면~창녕 방면~들꽃마을 방면~창녕 방면~합천'의령 방면~진주'의령 방면~천연염색 황토학교 방면~낙동강 제방 상포교 방면으로 접어 든 뒤 내제로 방면 우회전하면 율산마을 입구다. 율산마을 입구를 지나면 바로 코스모스 길이다.
코스모스 길에서 이병철 생가까지는 13㎞ 거리다. 율산마을 입구 네거리 좌회전~광웅농장 방면~삼거리에서 합천·부림 방면으로 접어 든 뒤 세간교를 건너면 안희제 생가 이정표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벽계관광지 방면으로 직진을 하면 곽재우 생가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병철 생가로 가려면 벽계관광지 갈림길에서 진주·의령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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