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쓰것다. 너 소리 배워라." 스승의 한 마디가 명창 박귀희(1921~1993)의 인생을 바꿨다. 그녀의 나이 열한 살 때였다. 대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화원 용연사 암자에서 판소리 공부에 들어갔다. 영호남을 오가며 동편제와 서편제를 섭렵했고 가야금 병창으로 국내 첫 인간문화재가 됐다. 박귀희는 예술인에 머물지 않았다. 사재를 털어 국악학교를 세웠고 죽을 땐 모든 재산을 팔아 국악학교에 기부하고 떠났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해외에 국악과 판소리, 가야금을 알린 전령사이자 선각자이기도 했다. 그가 세운 예술학교 제자들은 지금 세계를 누비며 국악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창조의 멘토 33인'은 대구경북의 인물 중에서 창의와 혁신, 개척정신을 상징할 만한 인물 33명을 선정해 그들의 삶과 업적 등을 소개한 책이다.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 등을 위한 교육자료로 선도적인 지역 인물들의 삶을 통해 청소년들이 미래의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발간됐다. 모두 3권으로 이뤄진 '온고지신 100선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 '온고지신 프로젝트'는 지역의 인물 100인을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망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들이 걸었던 삶을 돌아보고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책은 대구경북의 인물들을 ▷창의'혁신 ▷개혁'개척 ▷문학'예술 ▷인문'사회'과학기술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모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도하며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이끌어낸 인물들이다. 창의'혁신의 범주에는 가야금을 제작한 우륵과 석굴암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 불교 대중화를 이끌었던 원효,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풍류 정신을 재발견한 김정설,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인 장계향과 김설보를 다뤘다. 개혁'개척 분야에는 윤경렬, 홍해성, 홍유한, 박열, 권종대, 정도전, 김단야, 이승희 등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을 추렸다. 윤경렬은 박물관 운동을 했고, 홍해성은 정통 근대극을 개척했다. 새로운 조선 왕조를 설계한 정도전과 조선의 체 게바라로 불린 김단야 등이 눈길을 끈다.
문학'예술에는 시조 현대화를 이끈 이호우와 천재화가 이인성, 한국화가 이쾌대, 아동문학가 이오덕, 권정생, 신화 열풍의 주인공인 이윤기, 소설가 현진건, 명창 박귀희 등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인 이들을 각각 소개했다. 인문'사회'과학기술에서 탁월한 공적이 있는 인물로는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혜초, '삼국유사'의 일연,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린 남사고, 최초의 백과사전을 편찬한 권문해, 이만부, 유인식, 최무선, 이천, 정초, 박서생 등 10명의 생애를 되짚었다.
유명한 인물들도 있지만 최제우, 정도전, 남사고, 최무선 등 지역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상당수다. 전문가로 구성된 인물선정위원회가 각 인물을 선정했으며 분야별 전문가들이 집필을 맡았다. 각 인물의 마지막에는 생각거리와 인물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체험학습 추천코스 등을 담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도록 했다. 340쪽. 1만3천원. 구입문의 053)770-5000.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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