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중년-문숙

독수리가 허공에서 잡은 먹이를 땅에 내려와서 먹고 있다

날개 달린 것들도 먹을 때는 바닥에 발을 내려놓아야 한다

날짐승 길짐승 우루루 덤비며 서로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이게 내셔널지오그래픽이다

날개가 자유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내 시에 새가 희망처럼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수리가 머리를 처박고 불안한 자세로 되찾은 먹이를 먹고 있다

이제 상징을 고쳐 써야 할 것 같다

날거나 걷거나 높거나 낮거나

살아있는 모든 짐승은 먹이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음흉한 조물주가 한 가지만은 공평하게 만드신 것이다

귀밑머리 희끗희끗해지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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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것을 보고도 남들과 달리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려 사색하고 성찰하는 버릇이 시를 만듭니다. 그래서 시를 '바깥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또 다른 눈'이라 하기도 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 장면을 보고 시인은 또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늘의 왕자로 불리는 독수리가 지상에서 머리를 숙여 먹이를 먹는 모습은 독수리의 위엄을 믿는 시인에게는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삶의 공평무사함을 돌아봅니다. '모든 짐승은 먹이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이 그 결론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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