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환경조경학과 김치연(54) 교수는 수시로 비행선을 트럭에 싣고 전국을 돌면서 항공사진을 찍는다.
조경학을 전공한 그가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책까지 출간한 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다. 수천만원이 넘는 비행선과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 우리 문화유산과 국토 구석구석을 찍어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숨결' 시리즈 다섯 권을 출간하느라 그는 이미 1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탕진했다. 문화재청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순전히 자비로 제주도에서 독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온 그는 그래서 종종 '바보교수'라는 소리를 듣는다.
9월 초순. 하늘에서 본 '독도 경주의 숨결'을 출간한 그는 은행빚을 갚기 위해 사당동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사실상 파산상태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3년 안에 한국의 숨결 시리즈 15권을 다 내겠다고 밝혔다. '우리 국토, 우리 문화유산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렇게 )미련하게나마 자료를 남겨놓아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고 좌지우지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저 같은 무명의 조경학자가 하는 일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경종 역할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는 '문화독립군'이다.
문화재청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도 했지만 어디에서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문화바우처 역할을 공언하고 대기업에 이메일을 보내 지원을 요청한 적도 있지만 그들은 메일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관련 부처 장관이나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불로그에도 지원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지만 글은 곧바로 삭제당했다.
그래도 그는 씩씩했다.
"눈물이 난다. (우리 문화유산의) 서까래가 다 썩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도 모르고 있다. 경주에 가면 '망덕사지'가 있는데 그곳에 남아있는 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돼 있는데도 접근하는 길조차 없었다. 그렇게 관리할 거라면 왜 보물로 지정해 놓은 것인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은 소중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려고 지정한 것 아닌가?"
어쩌다가 김 교수는 우리 문화유산 항공촬영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대학과 석'박사과정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그는 '정원문화사' 등을 강의하다가 슬라이드 필름 대신 건축조감도처럼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그가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낙하산을 타고 낙하할 때 봤던 우리 국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면 중간쯤 내려왔을 때는 어느 정도 여유를 찾고 아래를 둘러보게 된다. 아마 진해 군항제 때 낙하시범을 한 것 같은데 하늘에서 본 구불구불한 벚꽃길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하늘에서 사진을 찍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고 이왕이면 그 사진으로 책을 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계획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김 교수는 경비행기 조종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항공촬영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친구가 한 달여 만에 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비행선을 만드는 '에어콤'이라는 회사를 찾아갔다. 2008년이었다.
그는 7m짜리 소형비행선을 만들었다. 제작비용만 3천500만원. 비행선은 초기에 한 번 바다로 날려버렸다. 3천500만원이 날아갔다. 또 수십 번 추락, 수리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갔다. 비행선을 띄울 때마다 헬륨가스 4통 40여만원이 들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비행선을 띄워 1천여 번 촬영, 헬륨가스비만 4억여원.
항공촬영은 반드시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또 사찰 측의 허락도 받아야 하는 등 촬영과정에서 받은 설움도 매우 많았다.
"사찰에서 항공촬영을 제일 못 하게 했다. 왜냐하면 불법 건축물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항공촬영에 나서도 사찰 측이 마구잡이로 못 찍게 하는 바람에 참 곤란할 때가 많았다…."
한 번은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사고(史庫)를 찍으러 비행선을 싣고 대형트럭을 몰고 갔지만 마침 문화재청의 사고 해체복원계획에 따라 해체한 상태라 아무것도 찍지 못하고 그냥 내려온 적도 있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대형트럭을 몰고 현장에 가면 자신을 '트럭기사'로 대하면서 아예 대꾸도 해주지 않는 등 수모를 당한 경우도 부지기수.
김 교수는 "우리는 말로만 문화유산을 보존하자고 외치고 있다"며 이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극히 미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문화유산은 정말로 천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문화재청도 비행선을 직접 구입,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항공촬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청은 김 교수의 7m보다 큰 12m짜리 대형비행선을 샀는데 한 번 찍을 때마다 헬륨가스비가 100여만원이 들어가는 등 운영경비가 많이 들자 급기야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문화재청이 비행선을 네 차례만 띄우고는 항공촬영 사업을 접어버린 적도 있었다.
문화재청은 어이없게도 김 교수가 촬영한 사진을 무상으로 기증할 것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것이 문화재청과 우리 문화유산의 모습"이라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고 마음 아파했다. 문화재청이 하지 못하는 문화유산 항공촬영을 개인이 하고 있다면 문화재청이 용역을 발주, 서로 '윈윈'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아예 그런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독도 경주의 숨결'을 출간하면서 그는 독도에 대한 역사적 오류 하나를 새롭게 밝혀냈다. 우리 외교통상부 홈페이지(dokdo.mofat.go.kr)에 소개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세종실록지리지'(1454)다. 그러나 그는 이것보다 더 이전에 편찬된 고려사(1449)에 "원래 우산과 무릉은 다른 2개의 섬으로 그 거리가 멀지 않지만 바람이 불고 맑은 날이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독도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조경학자가 독도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려 때부터 우리 땅이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주목받을 만하다.
그는 당장 외교통상부 홈페이지를 수정,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원을 고려시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항공사진 외에 직접 고문헌과 고사료를 꼼꼼하게 대조,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 내고 있다.
이를테면 경주 '노동리 고분군'의 142호분에 '옥포총'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에 대한 유래를 밝혀낸 것이다. 문화재청을 비롯해 누구도 이 명칭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자 그는 일본 자료까지 들춰 찾아내면서 이 고분이 경주관아에서 은퇴한 관기 '박옥포'라는 기생의 집터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도 이 책을 통해 밝혔다.
일본 억지주장의 근거로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 앞서 러시아군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비밀리에 독도에 들어가 통신기지를 설치한 사실을 적시했다. 그런데 이 무단점거가 이후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결정적 빌미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독도와 경주를 한 권의 책에 담은 것에 대해서는 "독도는 누가 뭐래도 경상북도의 한 부분이고 우리 자연문화유산의 일부분"이라며 "'한류, 한류 하고 외치지만 진정한 우리 문화, 우리 역사에서 '천년왕국'(신라)이 있었다는 것을 외국인들에게 알려주고 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복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래세대를 먹여 살리는 진정한 굴뚝 없는 성장동력산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하늘에서 본 문화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곁들여져 있다.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온갖 사료를 직접 두 발로 찾아내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경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박 전 대통령이 1971년 경주를 문화관광도시로 개발할 것을 지시하면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확정했고 그 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으로부터 받은 차관 288억원을 경주 개발 자금으로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488억원이 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이 경주 개발과 문화재 복원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 주체사관'을 정립해야 한다며 경주 개발과 문화재 복원에 앞장선 박 전 대통령의 노력이 김 교수가 비행선으로 문화유산 촬영에 나서 한국의 숨결을 펴내게 된 동기 중의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경주 개발 과정에서 제일 잘한 일이 기와집을 짓지 않으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때는 그래서 고도(古都)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후 전두환 정권 때 기와집을 지으면 돈이 많이 든다면서 마구잡이로 건축허가를 내 준 것이 경주를 망쳤다"고도 말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200여 차례 더 우리 문화유산을 찍고 나머지 10권을 책으로 펴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북과 경남 편을 비롯해 충남과 충북, 강원도와 경기, 서울 등을 한 권씩 낸 후 종합판(2권)과 영문판(2권)을 내면 마무리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화독립투사' 김 교수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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