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곧 방영을 앞둔 한 드라마 제목이다. 두 자매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본단다. 보통 드라마 속 연인들이 짓궂은 삼각관계를 극복하고, 양가 부모의 반대도 끈질기게 버텨낸 다음 '오직 사랑만으로' 결혼에 골인하지만 이 드라마는 다르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상견례, 집 구하기, 혼수와 예단 준비하기 등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다툴 예정. 또 이혼을 앞둔 부부들은 '단순히 서로 싫어서'가 아닌 좀 더 복잡한 현실적 문제들을 이야기할 예정이란다.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은 현실 속 결혼 문제가 그만큼 심각해지고 또 만연해졌다는 얘기다. 지역 청춘남녀들의 이런저런 결혼 고민 세태를 살펴봤다.
◆짝 찾기 힘든 지역 결혼시장
지역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여교사 김모 씨. 그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지난 추석 이후부터 거의 주말마다 맞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맞선에 드는 비용의 절반 이상이 교통비다. KTX를 타고 서울로 가서 맞선을 보기 때문.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나 광화문이 주요 맞선 장소다.
김 씨는 "부모님이 교사나 대기업에 다니는 반려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대구는 결혼 적령기의 남자 교사가 드물어 만나기 힘들죠. 물론 여교사 비율이 높은 '교단 여초' 현상은 수도권도 마찬가지지만 대신 '눈높이에 맞는' 다른 직업을 가진 남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죠. 대구에는 변변한 대기업이 없잖아요. 너무 따지는 거 아니냐고요? 한 번 하는 결혼이니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저도 이래저래 따지게 됩니다."
결혼정보업계에 따르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반려자를 찾을 때 조금 올려다보는 경향이 있다. 자기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성을 찾는 것. 그러면서 시간을 할애하는 여성들이 적체돼 결혼시장은 늘 '여초 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들이 반려자를 여유 있게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역시 고르고 고르다 결국 싱글족이 돼 버리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
지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역 한 초등학교 교장은 "자기 수준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반려자를 찾지 못해 노처녀로 사는 여교사들이 적잖다. 그래서 일찌감치 수도권으로 전근을 보내달라고 은근슬쩍 요청하는 젊은 여교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앞서 살펴본 여교사들의 이야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인구통계상으로 봐도 지역은 남녀가 짝이 안 맞다. 지역 결혼적령기 남녀의 연령대별 성비 변화로 유추할 수 있다.(성비란 여성 100명 당 남자수를 뜻한다. 100% 밑으로 내려갈 경우 여성이 더 많은 '여초'를, 100% 위로 올라갈 경우 반대로 '남초'를 뜻한다)
통계청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남녀 성비는 '25~29세'가 99.8%로 얼추 짝이 맞았던 것이 결혼 적령기를 지나는 '30~34세'는 97.3%, '35~39세'는 94.3%로 점점 불균형을 이룬다. 다른 지역 대도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반면 유독 서울의 경우 남녀 성비는 '25~29세'가 95.5%였던 것이 '30~34세'는 100.9%, '35~39세'는 102%로 짝을 맞춘다. 일자리는 물론 반려자 자원도 풍부한 서울로 지역 청년 유출이 심화되는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결혼 비용 부담에 싱글족 선택
반려자를 찾았더라도 부담스러운 결혼 비용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녀가 많다.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 927명(남성 452명, 여성 475명)에게 물었더니 가장 많은 여성(59%)이 남성이 부담해야할 결혼 비용으로 6천만~8천만원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38%)은 여성이 부담해야할 결혼 비용으로 2천만~4천만원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남성은 주택 마련 비용을, 여성은 그 외의 혼수 비용을 부담하는 불문율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지만 서로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비용이 문제다. 조사에서 남성 93%와 여성 87%가 "결혼 비용 마련에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셋방살이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도 좋았던 과거 세대와 달리 "적정 살림으로 신혼을 시작하고 싶어서"(39%)라며 그러지 않으면 "처가와 시댁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27%)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이미 상견례까지 하고 결혼을 준비 중이던 직장인 박모(35) 씨는 최근 갑작스런 집안 사정 때문에 계획했던 집을 구입하지 못해 결혼식 날짜를 하염없이 미루고 있다. 그는 "남편 쪽에서 책임지기로 한 주택 마련에 차질이 생기자 애인은 물론 처가 식구들과도 소소한 갈등을 빚고 있다. 금전적 이유로 파혼을 당한 지인들 얘기가 남 얘기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결혼을 '생략'하는 젊은 싱글족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의 '2010~2035 장래가구 추계' 자료에 따르면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그 중 사별로 인한 1인 가구(35%) 다음으로 미혼 1인 가구(33.8%)가 뒤를 이을 전망이다.
미혼 직장인 곽모(29'여) 씨는 "좀 더 젊음을 즐기고, 직업적 성취도 얻기 위해 결혼을 늦추다가 결국 싱글족을 선택하는 직장 동료나 지인들을 종종 본다"며 "예전과 달리 대학 시절부터 해외 유학이나 여행 등 자기계발에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한 젊은이들이 결혼 비용은 '허무하게 낭비되는' 비용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우리 사회 속 개인화의 한 단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담스런 결혼 비용의 문턱을 겨우 넘어서더라도 결국 돈이 결혼 생활을 옥죄는 사회상에 싱글족을 선택하는 분위기도 있다. 많은 부부가 돈 때문에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20~40대 이혼 남녀 938명(남성 451명, 여성 487명)을 대상으로 이혼 사유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남성 33%와 여성 40%가 '경제적'금전적 요인'이라고 답했다. 올 9월 대법원이 발간한 201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경제적인 문제'가 이혼 판결 사유 2위를 차지하며 1위인 '성격 차이'를 바짝 뒤쫓고 있다. 돈과 상관없이 행복한 결혼은 점점 동화 속 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동거 기약 못하는 젊은 주말부부들
결혼 1년차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대구 출신 직장인 이모(30) 씨. 그는 현재 서울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고, 동갑내기 아내는 고향인 대구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씨는 "부부가 지역에서 함께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역에 원하는 일자리가 없으니 한 명은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가고, 다른 한 명은 지역에 남는 경우가 주변에 허다하단다. 둘 다 서울로 가서 직장을 얻어도 되지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소득 대비 비싼 집값 등 주거비 부담이 앞을 가로막는다. 결국 기약도 없이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데, 둘 다 주말도 반납하고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 신참들인 탓에 만남조차 힘들단다.
주말부부는 점점 늘고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부부 10쌍 중 1쌍은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1천154만7천 가구 중 115만 가구가 비 동거 부부다. 2000년 63만3천 가구(전체 5%)였던 것이 2배가량으로 늘었다. 통계청 측은 "비 동거 부부 중 별거 부부도 있겠지만 국내에서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고 흔히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취업 관문을 겨우 통과한 다음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나 같은 주말부부들은 감히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를 셋까지 낳으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다고 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수많은 주말부부들에겐 딴 나라 얘기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려면 현실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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