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원산지는 아비시니아(Abyssinia'에티오피아의 옛 이름). 이곳에서 커피 재배가 열대지역으로 전해졌다고도 하고, 때로는 아라비아를 커피의 원산지로 추정하기도 한다. 커피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이 발견된 것이 9세기 말경임을 감안하면, 커피 재배의 전래 속도는 꽤 느린 편이어서 15,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예멘지역에서 집약적인 재배가 이루어졌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돈이 되는 이 새로운 사업을 독점하려 커피가 다른 지역으로 전래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커피 열매를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바짝 말린 후 전달해 커피 종자의 발아력을 파괴했다. 이후 성지 순례자들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조금씩 전파되어 자라기 시작한 커피나무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커피생산국에서 자랄 수 있었던 데는 '가브리엘 마티외 드 클리외'라는 해군 장교의 집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마르티니크(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프랑스령 섬)의 보병대장이었던 클리외는 1720년 당시 파리식물원에서 극소량 재배되고 있던 커피나무 종자를 어렵게 구해 마르티니크 섬에서 재배했다. 커피 종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던 파리 궁정의 어느 백작부인 덕택에 가능했었다는 로맨틱한 일화도 전해온다.
마르티니크까지의 항해 또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두 번째 항해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랄 수 있는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유리관에 묘목을 보관했다. 해적선을 만나 배가 약탈당할 뻔도 했고, 엄청난 폭풍우로 배가 전복될 위험도 넘겼다. 오랜 항해로 식수가 부족한 배 안에서 그는 개인에게 소량으로 할당된 식수를 커피 묘목에 주면서까지 커피나무를 지켰고, 사람도 살기 어려운 상황에 그깟 나무가 중요하냐며 묘목을 바다에 버리려는 선원들의 반발도 이겨냈다. 2개월의 항해 끝에 섬에 도착해 노심초사 커피 묘목 재배에 정성을 기울였고, 1727년 발생한 지진으로 섬의 모든 경작물이 전멸한 땅에 다시 커피 종자를 뿌려 커피 재배를 지속했다. 그 덕에 커피 묘목은 머나먼 이국땅에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었고, 그 한 그루의 커피 묘목이 현재 멕시코와 중남미 커피의 원종이 되었다. 작은 묘목 하나가 서인도제도와 멕시코만 인접지역에 부를 안겨주었으며, 그는 프랑스 역사를 통틀어 인류 전체를 위해 이처럼 조용히 위대한 봉사를 한 인물은 일찍이 없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힘들게 걸었던 삶의 길이 30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커피라는 새로운 세계를 활짝 열어주는 바탕이 됐다.
삶이란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때는 화창한 봄날 꽃길과 같을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은 눈'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험한 산길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과 비유되는 길이란 단어는 내게 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학창시절, 많은 책 중에서 가장 크게 마음으로 읽어내린 책이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이다. 육체적으로 몹시 힘든 상황에서도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당시 심리적으로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내게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또 내 인생의 멘토인 고교 은사께서 애창하시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는 그 가사가 주는 힘과 그분이 노래를 부르실 때의 곧고 결연한 모습에서 그 어떠한 조언보다 더 큰 무게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
인적 없는 고요한 산길, 이른 아침의 강둑길, 석양 무렵의 해안도로…. 길을 찍은 사진이나 길을 노래하는 음악, 길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의 의미에서 새로운 영감과 기운을 얻는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숙명처럼 다가온 커피라는 길 친구 덕분에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걸어가야 할 자신만의 길이 있다. 안전하고 평온한 길을 선택 할지, 도전과 용기가 필요한 길을 선택할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틀린 길은 없다. 어떤 길이든 좋지 않을까. 다만 다를 뿐이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걷는다.
안명규/커피명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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