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경기 바닥 쳤다"…전문가 "섣부른 판단"

6분기 연속 0%대 성장…산업별 불황의 그늘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경제에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9월 생산과 소비, 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8월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며 섣부른 전망을 내놓았다. 과연 그럴까?

경제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 경제가 6분기 연속 전기 대비 0%대 성장을 하는 등 성장 속도 자체가 크게 둔화된 상태에서 단기적 개선은 바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기가 진짜로 바닥을 쳤다고 하더라도 대외 경제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계속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산업 곳곳에서 점점 짙어가는 불황의 그늘을 볼 수 있다.

◆기업 이익 반 토막

최근 지난해 매출액 1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올해 실적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영업 이익률은 2010년 이후 올해까지 2년 연속 하락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106개 기업의 이익률은 6.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기업이 세계 경기 침체 여파로 수익 구조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나 홀로 실적 개선'이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업종별 영업 이익률을 보면, 삼성전자가 속한 IT업종(10.1%)과 현대차가 포함된 자동차업종(10.4%)의 이익률만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 밖에 기계'조선업종은 올해 영업 이익률이 5.4%로 2010년(11.8%)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아질 전망이다.

세계적인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장비 수요가 크게 줄었고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신규 선박 발주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종과 환율 상승에 시달린 에너지업종도 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철강업계도 직격탄

장기 불황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 철강 업계다. 산업 불황이 길어지면서 국내 철강회사들이 일제히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고 임금 삭감 등 자구책도 마련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10월 한 달 동안 전기로(하이밀) 열연공장 감산에 들어갔다. 월간 감산 분량은 약 2만7천t으로 전체 전기로 생산량 중 2%에 해당한다. 현대제철도 감산에 들어갔는데 이달부터 충남 당진공장 내 A열연공장 생산량을 20% 줄였다.

국내 4위 철강업체 동부제철도 이달부터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열연강판을 약 5만t 감산한다. 그 여파로 생산량은 월 12만t 수준으로 줄어들고, 내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1천700여 명의 전 임직원 임금도 30% 삭감한다. 철강업계는 감산과 더불어 다양한 경비 절감 아이디어를 시행 중이다.

서울 포스코센터는 사무실과 주변 가로등 소등시간을 오후 11시에서 8시로 조정했고 포항제철소는 경관 조명의 소등 시점을 오전 2시에서 자정으로 앞당겼다. 동국제강은 최근 포항제강소에서 경영위기 극복과 임직원의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 고철 줍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한때 잘나가던 철강 회사 직원들이 넝마주이로 전락했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벼랑 끝 건설사들

장기적 주택 경기 침체 여파로 건설사들의 불황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살을 깎는 자구책을 비웃듯이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제는 퇴출을 기다려야 하는 업체들이 상당하다.

최근 건설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부분이 입주율 높이기다. 입주 시 지원금과 교통편을 제공하는 한편 단지 내 영어마을을 만드는 등 건설사들의 입주율 높이기 노력은 눈물겹다.

건설사들이 입주율 경쟁에 사활을 거는 것은 입주 때 들어오는 잔금으로 다음 사업을 위한 밑천을 확보하자는 차원에서다. 그래야 사내 경제가 돌고 회사의 미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주택시장 침체는 여전히 이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입주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입주난이 현실화될 경우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은 파산하거나 정부에 의해 강제 퇴출된다. 건설사 식구들이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쏟아지고 협력업체가 잇따라 도산할 경우 국가 경제가 휘청이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유통업계는 착시현상

유통업계의 매출이 반짝 상승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다. 주요 백화점은 10월 매출이 작년보다 소폭 늘었다고 이달 5일 잠정집계했다. 기존 점포를 기준으로 롯데백화점은 작년보다 1.2%, 현대백화점 1.6%, 신세계는 3.3% 증가했다. 하지만 업계는 이런 매출 증가를 '착시(錯視)현상'이라고 단언했다. 명품은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가격을 올린 부분이 매출 증가로 잡혔고, 등산복 역시 백화점들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했기 때문에 매출이 늘었을 뿐, 마진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낮은 수익률은 세계 금융위기로 증시가 몇 차례 폭락했던 지난 2008년에도 한 차례 겪었던 터라 불과 몇 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충격은 컸지만 곧 회복했고 카드대란(2003, 2004년) 때는 20대 소비는 줄어도 중산층의 소비는 건실했지만 최근 불경기는 중산층까지 백화점을 기피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백화점의 부진은 인테리어 업계에도 전이되고 있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매장들은 1년에 두 차례 매장 인테리어를 바꿔왔다. 하지만 백화점 경기가 나빠지면서 9월 끝난 백화점 가을'겨울 개편 때는 공사 금액이 예년의 30% 수준으로 줄었다. 백화점 손님이 줄다 보니 예전에는 다 교체하던 옷걸이를 올해는 색만 다시 칠해서 쓰고, 매장 벽이 3개인 경우 1개만 바꾸는 곳이 늘고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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