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자는 돈" 기저귀 하루 5번·정해진 시간만 갈아줘

[돈벌이 전락한 요양병원] <상>요양보호사의 24시

지난달 새벽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 한 명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이 병원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24시간 일하고 교대 근무를 하지만 이들을 위한 취침 공간이 없어 이렇게 복도에서 휴식을 취한다.
지난달 새벽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 한 명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이 병원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24시간 일하고 교대 근무를 하지만 이들을 위한 취침 공간이 없어 이렇게 복도에서 휴식을 취한다.
지난달 경북의 한 요양병원의 8인 1실 병실에서 노인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경북의 한 요양병원의 8인 1실 병실에서 노인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대의 요양병원은 노인들이 거쳐 가는 '필수 코스'로 통용된다. 맞벌이 가정이 늘고, 병든 노인을 집에서 돌볼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노인들은 '요양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일반 병원의 목적은 치료이지만 요양병원은 치료와 동시에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일부 요양병원들이 침상에 누운 노인들을 우롱하고 있다. 보호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요양병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요양병원의 실태를 요양보호사의 눈으로 들여다봤다.

◆"내 부모는 절대 안 보냅니다"

6년차 요양보호사 A(57'여) 씨의 하루를 살펴보자. 11월 10일 오후 10시 경산의 한 요양병원. 출근한 지 14시간이 지났지만 퇴근하려면 10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병실 앞 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잠시 한숨을 돌린다. 바닥의 찬 기운이 엉덩이에 그대로 전해진다.

24시간 종일 근무지만 요양보호사가 쉴 수 있는 간이침대 하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낮시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환자는 15명. 야간에는 요양 보호사 2명이 환자 35명을 돌본다. 잠시 숨 돌릴 틈조차 생기지 않는다.

기저귀를 가는 시간은 하루에 딱 5차례. 오전 5시와 9시, 오후 2시, 7시, 11시다. 이 시간이 아니면 어르신들 기저귀를 바꿔서 안 된다. 이곳 규정이 그렇다. 층층이 사용할 수 있는 기저귀 개수도 정해져 있다.

환자가 대변을 자주 보든 아니든 상관없다. 모든 간병 시스템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 병원은 '업무의 효율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저귀 값을 아끼려는 꼼수일 뿐이다. 한 달 70만원 병원비 안에 기저귀 값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최대한 기저귀 사용량을 줄여 비용을 아끼려는 것이다. 이 비용에는 의료비, 진료비, 간병비, 기저귀 값 등 모든 게 포함돼 있다.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간병이다. 하지만 환자복과 침대 시트 빨래까지 이들 몫이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했을 때는 청소 담당자가 따로 있었고, 모든 빨래는 살균처리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옥상에 말리는 것도 요양보호사가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르신 15명을 혼자 간병하는 것은 무리다.

어제는 ○○호 김말복(가명'84) 할머니가 "밥이 맛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맞는 말이다. 꽁치 하나를 여섯 조각으로 잘라 환자에게 한 토막씩 나눠주는 이 병원의 식사는 우리가 먹어봐도 엉망이다.

몇몇 보호자들이 반찬이 부실하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보호자들이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우리가 식사 시간에 꺼내 어르신들에게 먹여준다. 김 할머니처럼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병원은 치매 어르신과 의사 표현이 가능한 어르신들을 분리 입원시킨다.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식사라도 생선 개수가 병동별로 다를 때가 있다. 치매 병동에 들어가는 식판에는 꽁치가 단 한 토막, 정신이 건강한 노인 병동에는 꽁치가 두 토막씩 들어간다. 치매 어르신들이 먹는 죽에는 콩가루가 없었지만 다른 병동용 식사에는 콩가루가 뿌려져 있다.

동료 요양보호사 5명은 지인이나 친척들이 입원 문의를 하면 '추천 불가'라며 손사래를 친다고 했다. 동료 요양보호사 한 명은 "병원에서 보호자들 귀에 '나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말씀을 잘하는 어르신들한테는 더 잘해준다. 내가 보호자라면 절대 이 병원에 부모를 보내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이 요양병원을 그만두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환자를 '돈'으로 보는 요양병원

취재진은 보호자를 가장해 대구와 경북의 요양병원 여러 곳을 찾았다. 지난달 18일 오후 경산의 요양보호사 A씨가 일하는 병원. 일요일 저녁 환자들을 찾아온 보호자들 틈에 뒤섞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 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병원 평가 2등급을 받은 곳. 여성환자 전용 병실인 5층으로 갔다. 33㎡ 남짓한 공간에 침대 8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장 나이가 적은 환자가 77세, 가장 많은 환자는 90세였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대부분이 휠체어나 부피가 큰 보조 기구를 사용하지만 비좁은 공간 탓에 휠체어 1대만 병실 한쪽에 겨우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환자는 치료 대상이 아닌 인격체로 존중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 요양보호사는 "환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돈 되는 치료대상일 뿐"이라며 "병실 하나당 크기를 최대한 줄여야 한 방에 침대를 많이 넣고 많이 입원시킬 수 있다. 면적이 좁아야 겨울철 난방비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대구의 다른 요양병원. 이곳에서는 보호자를 가장해 상담을 받았다. "한 달에 75만원까지 해드려요. 가격 조정이 가능합니다." 50대 사회복지사가 다짜고짜 가격 협상부터 제안했다. 환자 140명을 수용하는 이 병원의 관계자는 "하루에 간병비 1만원, 한 달 진료비와 식비 50만~60만원, 기저귀 값 5만5천원"이라고 설명했다. 치료와 병원 의료진 소개는 없었다.

취재진이 의사가 몇 명이냐고 묻자 "4명이 있다"고 간략하게 답할 뿐 전문의 전공과 환자에게 어떤 치료를 해주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환자 몇 명을 간호하는지 물어도 "개인 간병을 원한다면 하루에 8만원을 내야 한다. 공동 간병이니까 빨리 서비스 안 되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들이 협상 카드로 내민 것은 간병비. 요양보호사들은 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간병업체에 매달 20만원을 따로 결제하면 된다는 식으로 원래 가격보다 낮췄다. 의료비와 진료비는 깎을 수 없기 때문에 간병비로 협상에 나선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보호사

가격 경쟁에 내몰린 요양병원들은 간병비뿐 아니라 비품 사용비를 아껴 수익을 내기도 한다. 요양병원에서 6년간 근무한 요양보호사 B(41'여) 씨는 "가격이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품비를 최소화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B씨는 또 "병원에서 기저귀는 물론 물티슈나 비닐장갑도 '아껴 쓰라'는 지시를 내린다. 환자별로 각기 다른 질환을 앓고 필요한 서비스도 다르지만 가격은 70만~80만원 '정액제'라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 질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치료와 요양을 동시에 제공하는 요양병원은 간병 서비스가 필수다. 하지만 환자들과 24시간 함께하는 요양 보호사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노출되면서 환자들은 제대로 된 요양은커녕 사각지대에 방치돼 편안한 노후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로 7년째 일하고 있는 C(50'여) 씨는 요양병원에서 5개월간 일한 뒤 개인 간병으로 방향을 바꿨다. C씨는 "한 사람이 환자 10~12명을 돌보다 보면 '발바닥에 불이 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루 12시간 근무 중 점심시간 1시간이 있지만 이때도 어르신들 식사를 수발해야 하니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한다"고 털어놨다.

C씨는 또 "욕창이 있는 어르신들은 2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서 시원하게 해줘야 하는데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없어서 욕창이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병원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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