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안치환 '타는 목마름으로'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댄 카일러가 자신의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기 바라는 심리를 일컫는 심리학적 용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감 부족, 무책임, 무기력증 같은 양상을 광범위하게 설명하는 것에 사용. 겉으로는 젊게 사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사회적 관계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며 자신이 의지하지 못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피하게 되는 경우로 미숙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함. 결혼이나 취업을 못하거나 이성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고립되어 현재 자신의 정서와 비슷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10대나 20대의 사고를 지속, 결국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실제로는 어린아이로 남고 싶은 유아적인 욕구를 나타내는 것. 이상은 모두 사전에서 피터팬 신드롬(Peter Pan Syndrome)을 설명하는 것이다. 길게 인용을 하긴 했지만 사실 피터팬 신드롬은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들처럼 떼를 쓰고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억지를 부리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인 철부지들의 행태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남기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 만연하고 있다. 권력에 연연한 정치인들이나 그것에 편승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학자들의 행태야 늘 보아온 것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한 때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한 시인의 막말에 이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오래 전 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의 식탐에 너무나 불편했다는 후배의 이야기는 최근 그의 일련의 행동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짐작이 가게 한다. 인간의 욕심 가운데 뿌리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고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생존 욕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에 매달린다면 그 심리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1980년대를 관통하던 어느 날, 그가 죽음으로써 독재에 항거하던 젊은이들에게 '죽음의 굿판' 운운했을 때, 우리는 그의 병을 의심했어야 했다. 그의 생명사상이란 것이 행여 개인적이고 객쩍은 욕망의 산물이 아니었는지 분명히히하게 짚어야만 했었다. 단지 우리가 한 시기 그에게서 받았던 사상적 향유가 너무나 큰 것이라고 해서 묵인한 것이 오히려 오늘 그의 병을 이토록 키운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자신의 지지와 그 선택을 말할 권리는 분명 있다. 해서 그가 자신을 핍박했던 세력을 지지한 것을 두고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을 이탈하는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삶의 궤적에 함께 있던 사람들을 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몽니를 넘어 패악에 가깝다.

최근 그는 뜬금없이 한 언론의 지면을 통해 자신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향해 "못된 쑥부쟁이" "깡통 저널리스트"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그 폭언은 현대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해준다.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드는 것이야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감히 단언하건대 그는 지금 피터팬 신드롬을 앓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자신만이 주목받아야 하고 자신만의 주장이 옳으며 그 주장에 반대하거나 반대할지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퍼붓는 저주의 말들을 병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주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화가 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에게 빚졌던가? 민주주의에 목말라 하던 대학시절 우리는 또 얼마나 그의 시를 절절하게 불렀던가? 분명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 다시금 그의 시를 노래로 듣는다. 그가 행하는 저주의 굿판이 다시는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씨, 안치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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