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생의 뿌리-구석본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오월의 비슬산 숲에 들어가면

물푸레나무, 때죽나무, 상수리나무

그 사이사이에 이름 없는 일년생 풀잎들이

푸른빛을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 올리는데

푸른빛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것은

지난 가을 혹은 그 전 해의 가을, 더 먼 가을날

하릴없이 바람에 흩뿌려진 낙엽이다

켜켜이 쌓여 밑에서부터 조금씩 썩어가며

푸른 잎을 밀어올리고 있다

잎들이 등걸을 타고 하늘로 기어오를 때마다

낙엽은 조금씩 부스러지며 흙 속으로 스며든다

한때, 서로 다른 잎의 넓이와 빛깔을 지우고 부스러져

물푸레나무, 때죽나무, 상수리나무

그 밑으로 일년생 풀잎들을

세상으로 세상으로 밀어올리고 있는

지난 가을의 낙엽들,

부스러지며 뿜어 올리는 생의 뿌리였다.

----------------

시인은 구체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원리를 통찰한다는 점에서 과학자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통찰을 증류수와 같은 추상적인 공식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냄새와 빛깔을 지닌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비슬산에서 서로 다른 나뭇잎들이 제 모습과 빛깔을 지우고 부스러져 일년생 풀잎을 키우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토양, 즉 '생의 뿌리'라는 통찰을 읽어냅니다. 낙엽 빛깔과 흙냄새가 묻은 통찰입니다.

시인·경북대교수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대구의 '첫 여성 단체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구의 경제적 문제를 해...
이달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서며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중동 전쟁의 여파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어 1,500...
경기 남양주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40대 남성 A씨가 의식 불명 상태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지연되고 있으며, A씨는 범행 후 전자발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폭격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하겠다고 공언했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