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절술/카밀리앵 루아 지음/최정수 옮김/톨 펴냄
'방금 펜을 내려놓은 당신은 행복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이 쓴 첫 번째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응시한다. 여러 달, 심지어 여러 해 동안 애쓰고 견디어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좋다. 수필이든 당신의 인생 이야기든, 당신이 오래 몸담아온 분야의 이야기 혹은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라도 좋다.
다소간 흥분한 상태로 당신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당신의 글을 알아보고 즉각 출판하여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줄 출판사를 물색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당신의 글을 읽고 감동에 젖어들 독자들을 그려 본다.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당신의 일상을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름난 출판사를 골라 당신의 원고를 보낸다. 그리고 답변이 오기를 기다린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간다. 연락이 늦는 것 같아 조금 불안하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우편함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편지다.'
"선생님의 원고를 채택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빠져 있던 당신은 기어코 원기를 회복하고 원고를 조금 수정한 다음 빙그레 웃는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단 말이지. 수정한 원고를 이번에는 여러 출판사에 보낸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다시 출판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이전처럼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일단 두 번째 글이 성공적으로 출판되고, 이름이 알려지면 첫 번째 원고는 서로 출판하겠다고 나설 테니 말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원고까지 줄기차게 거절당한 당신은 이제 왜곡된 출판시장을 비판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무명작가의 글을 출판사들이 어떻게 거절하는지에 관한 글이다. 지은이 카밀리앵 루아(캐나다 사람)가 자신이 출판사로부터 직접 받은 99통의 거절 편지들을 묶은 것이다. 그는 "편집자들은 무명작가의 원고를 거절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어떤 편집자는 깊은 유감을 전하고, 어떤 편집자는 출판사의 사정 운운하고, 또 어떤 편집자는 비아냥거리고, 어떤 편집자는 아쉬운 몇 가지 부분을 손 봐 줄 것을 요구하며, 얼마나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선생님의 원고를 철저하게 수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출판사의 성격과는 맞지 않지만 선생의 원고를 출판하기를 원하는 더 나은 출판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캐나다는 무명작가의 원고를 받아서 검토하고 답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무명작가의 원고를 받는 곳도 드물고, 검토 후 거절 편지를 보내는 곳은 더욱 드물다.)
출판사들이 원고 채택을 거부하는 1차적 원인은 원고가 함량 부족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글을 읽어본 편집자들 눈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기본기도 안 된 이야기'인 경우가 태반이다. 설령 탄탄한 글이라고 해도 무명작가의 이름으로는 안 팔리기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도 흔하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라고 할지라도 웬만해서는 자신의 작품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기가 어렵다. 수많은 등단 작가들 역시 '자비출판'(自費出版)을 하는 게 일반적 현실이다.
지은이는 "당신은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언젠가는 당신이 쓴 글이 책으로 출간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출판계는 지독한 곳이다"며 "출판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도박으로 내 작가 경력은 끝이 났다"고 덧붙인다.
문학'출판 담당을 오래 한 기자의 눈으로 또 소설을 여러 권 출판한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자의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한 작전'일 뿐,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명작가가 자신의 책을 이름난 출판사에서 출판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0)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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