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다. 가난한 호주머니의 손님일지라도 자기 몸뚱이를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낸다. 그뿐이랴. 순대'튀김'김밥 친구들도 곁들여 드시라고 뜨거운 국물을 아낌없이 제공하며 분식계의 '상생'에도 앞장선다.
하굣길 출출한 어린 학생들, 시큰했던 하루를 맵게 달래고픈 퇴근길 회사원들, 그리고 끼니의 허전함을 저렴한 간식과 야식으로 채우고픈 모든 사람들. 떡볶이는 이들을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으로 능히 품는다. 이 맛, 그냥 나온 맛이 아니다.
◆떡볶이 전성기 만든 명소, 신당동과 신천동
꿀꿀이죽, 순댓국, 빈대떡, 그리고 떡볶이. 수십 년 전 시장 뒷골목 노점에서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음식들이다. 이 중 떡볶이는 유독 '맛'으로 튀었다. 그러면서 서울 신당동에는 1950년대부터 소문난 떡볶이 가게가 밀집했다. 이곳이 떡볶이의 상징적 명소가 된 까닭은 신당동의 전설적인 '떡볶이 대모' 고 마복림 할머니가 개발한 '즉석 떡볶이'를 요즘 떡볶이의 원조로 보기 때문. 이전에도 떡'고기'채소'양념을 한데 볶아 먹는 음식은 있었다. 하지만 떡볶이의 매운 맛을 부각한 조리법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얻은 것은 마 할머니가 최초였다.
신당동 떡볶이의 전성기는 1970년대부터였다. 일대가 개천 복개 공사로 정비되며 새로운 떡볶이 가게들이 들어섰는데 뒤늦게 시작한 가게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뮤직 박스'를 설치하고 DJ를 앉혔다. 여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때의 풍경을 노랫말로 담은 가요도 나왔다. 디제이 디오씨의 '허리케인 박'(당시 유명 DJ 이름)이다.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면서 DJ도 사라지고 40여 곳 밀집했던 가게들도 점점 줄면서 지금은 예전만큼의 인기는 없는 상황. 하지만 최근 일부 가게에서 한때 명물이었던 DJ를 다시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신당동 떡볶이거리를 한국음식을 대표하면서도 스토리텔링 및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음식테마거리'로 지정해 사업을 펼치는 등 신당동 떡볶이는 다시 조명받고 있다.
대구 신천동도 신당동 못잖은 곳이다. 신당동 떡볶이 다음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친 것이 신천동 떡볶이다. 떡볶이 국물을 많이 주는데 여기에 튀긴 만두와 어묵을 곁들여 찍어 먹는 것이 다른 지역 떡볶이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신천동 신천시장의 신천 할매떡볶이'황제떡볶이'궁전떡볶이 등 3대 떡볶이 가게가 유명했고, 지금은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확장했을 정도다.
자칭 떡볶이 마니아 직장인 박수근(30'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는 "신당동과 신천동 모두 지명에 매울 '신'(辛) 자가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하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두 곳 지명에는 모두 새로울 '신'(新) 자가 들어가 있다. 하긴 우리나라 떡볶이 문화에 새로운 계기가 된 장소들인 것은 틀림없다.
◆전통과 새로움 공존하는 대구 떡볶이
신천동보다 조금 덜 알려졌지만 대구 신내당시장에 있는 달떡(달성고떡볶이) 골목도 유명하다. 골목이 형성됐을 당시 마땅히 붙일 지명이 없어 인근에 있는 달성고등학교가 이름 앞에 붙었다. 신당동이나 신천동 떡볶이 골목에는 비할 수 없지만 유명 떡볶이 가게가 몇 곳 있다.
이달 2일 찾은 달떡 골목의 한 떡볶이 가게. 3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플래카드가 붙은 이곳은 떡볶이에 대구 별미인 납작만두를 함께 담아 준다. 1인분에 1천원. 몇 년째 올리지 않은 '착한' 가격이다. 한 그릇 시켜 먹어봤더니 일반적인 떡볶이보다 달콤한 맛이 강했다. 달떡의 '달'자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곳 주인은 시어머니의 가업을 이어받은 며느리다. 사실 신당동과 신천동에도 시어머니로부터 맛의 비법을 전수해 며느리가 운영하는 떡볶이 가게가 많다. 떡볶이 가게의 어떤 '법칙'으로 보였다.
이외에도 동성로 떡볶이 골목이나 고성동, 경신고 인근 등 가게 몇 곳 정도가 모인 전통적인 떡볶이 거리가 대구에 적잖다. 이러한 전통을 감각적으로 계승한 새로운 떡볶이 명소가 대구에 많다. 이달 3일 찾은 경북대 북문 인근. 이전에는 분식점이 적잖게 있던 곳이지만 요즘은 아예 떡볶이 전문점을 표방하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구지역 브랜드인 '미숙이네 떡뽀끼'와 '빨봉분식' 등 젊은이들의 취향을 고려한 깔끔한 인테리어와 이색 메뉴를 갖춘 떡볶이 가게들이다. '빨봉'이란 '빨간 봉다리'의 준말로 떡볶이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가리킨다. 가게 이름에 '분식=떡볶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외에도 동성로와 지역 다른 대학가를 둘러봤더니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떡볶이 전문점이 붐이다. 역시 대구지역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두 남자 떡볶이'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카페 분위기의 떡볶이 가게로 유명하고, '이웃집 소녀 떡볶이'는 매운 맛 위주의 떡볶이 시장에 달콤한 맛, 순한 맛 메뉴를 특화해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인기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떡볶이의 인기가 대구만의 얘기인 것은 아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인기를 얻으며 떡볶이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떡볶이 프랜차이즈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점포 수가 2천700여 개, 시장 규모는 1조6천억원대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지난해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물었더니 91.1%가 떡볶이 프랜차이즈 매장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떡볶이 구입 시 가장 고려하는 요소는 떡과 소스의 맛(84%)이라고 답했는데, 중복 대답으로 33.8%가 매장 위생 상태도 꼼꼼하게 고려한다고 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규격화된 포장 시스템을 갖춘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인기 비결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전통적인 '매운' 떡볶이를 계승하면서 이색 메뉴도 개발해 공존시킨 것도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분식 프랜차이즈 '스쿨푸드'는 떡볶이에 짜장소스를 가미한 '짜짜국물 떡볶이'와 스파게티의 크림소스를 얹은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내놨다. 전통과 이색 메뉴를 모두 합쳐 떡볶이 메뉴만 16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피자'해물'치즈 등의 재료를 가미한 퓨전 떡볶이 메뉴가 분식업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반화돼 있다.
◆떡볶이, 불황 속 흥행 이유는?
BC카드에서 자영업 위주의 가맹점 100만여 곳을 120개 업종으로 분류해 지난 한 해 매출을 분석했더니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떡볶이 전문점(30.5% 증가)이었다. 떡볶이전문점의 가맹점당 평균 카드 매출액은 한 달 기준으로 2011년 171만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223만원으로 늘었다. 카드사 관계자는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저렴하지만 푸짐한 불황형 먹을거리의 인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좀 더 사정을 들춰보면 '불황에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어김없이 증명된다. 의학적으로 보면 우리 몸은 음식 속 '캡사이신' 성분이 내는 매운 맛을 맛이 아닌 통증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뇌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매운 맛이 강할수록 기분은 더욱 좋아지는 셈. 물론 순하고 달콤한 떡볶이 메뉴도 적잖지만 일단 '떡볶이=맵다'는 인식이 떡볶이의 불황 속 흥행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떡볶이는 물가관리 대상에도 올랐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떡볶이가 새로 포함됐다. 서민 소비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떡볶이 전문점이 늘면서 조사가 쉬워져 제대로 된 물가 측정이나 1인분 계량화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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