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달 4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 미리내맨션 앞 인도에서 다급한 비명이 났다. 건너편에서 이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황래구(50'대구 남구 봉덕동) 씨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황 씨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던 이태자(64'여'대구 남구 봉덕동) 씨를 발견했다. 장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 이 씨가 그만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것. 이 씨는 넘어지면서 얼굴을 바닥에 박고 손을 잘못 짚어 손목이 꺾여 일어설 수 없는 상태였다. 코와 입에서 피가 나던 이 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살려달라"고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바닥은 이 씨가 흘린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하지만 이 씨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시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10m쯤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10여 명의 시민은 넘어진 이 씨를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차가운 빙판길에서 넘어져 홀로 도움을 요청하던 이 씨를 향해 달려온 사람은 건너편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던 20대 여성과 황 씨뿐이었다. 당황한 황 씨는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휴지를 빌려 이 씨의 상처 부위를 지혈하고 119에 신고했다. 20대 여성은 손을 다쳐 수화기를 들 수 없는 이 씨를 대신해 가족에게 연락을 했다. 1시간 같던 5분이 지난 뒤 구조대원이 도착했고 이 씨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재 이 씨는 광대뼈에 금이 가고 손목이 부러져 응급실에서 수술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장에 있던 이창민 119구급대원은 "빨리 신고를 안 했다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데 주변 시민의 도움으로 큰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씨를 구급차에 실어 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황 씨가 주변을 둘러봤을 때 버스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황 씨는 "어머니, 할머니 같은 분이 길에 쓰러져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수 있느냐"며 "건너편 도로에서 뛰어와 도와준 아가씨가 고마우면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씨의 며느리 박현정(42) 씨는 "어머니가 지나가는 고교생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경황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만 남기고 나왔는데 도와준 분들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다시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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