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녹는 봄만 기다리나" 꽁꽁 얼어버린 대구 제설행정

지난달 폭설 빙판사고 속출…행정기관은 책임 떠넘기기

9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주택가 빙판 도로에서 아이를 업은 주민이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9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주택가 빙판 도로에서 아이를 업은 주민이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제설·제빙 대책이 '봄만 기다리는 꼴'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해 말 폭설이 내리고 2주나 지났지만, 대구 시내 주택가 이면도로와 골목길, 인도 곳곳이 여전히 빙판길로 방치돼 미끄럼 사망 사고까지 발생하는 데 따른 것이다.

주민들 스스로 힘으로는 영하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제빙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대구시와 각 구·군청은 '내 집·상점 앞 눈치 우기'조례만 내세우며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대구에는 12.5㎝의 눈이 내려 12월 적설량으로는 60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차량 흐름이 원활한 도심 주요도로와 달리 제설작업이 더뎠던 주택가 이면도로와 골목길, 인도에는 영하 날씨에 얼어붙은 눈이 아직 켜켜이 쌓여 있다.

이에 따라 대구 시내 곳곳에서는 빙판길 미끄럼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대구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폭설 이후 발생한 빙판길 미끄럼 사고는 229건에 달하며, 이달 들어 8일까지만 104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31일 동구 효목동 주택가 빙판길에 미끄러진 40대 장애인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달 7일 끝내 숨지기도 했다. 9일 찾아간 사고 현장 주민들은 "사람까지 죽었는데도 행정기관은 동네 빙판길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며 "주민 안전은 아랑곳없이 봄이 오기만 기다리겠다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빙판길 사고가 속출하는 데 반해 대구시청이나 8개 구'군청의 제빙 매뉴얼은 사실상 전혀 없는 실정이다. 시청은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주택가 지역은 구'군 기초자치단체 관할이라며 떠넘기고, 기초자치단체들은 "내 집'상점 앞 눈치우기 조례에 따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지만, 취약 지역 분석이나 제빙 장비 지원 노력이 아예 없다.

현재 제빙 행정은 동네 주민센터가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가 들어오는 지역에 한해 드문드문 제빙작업에 나설 뿐 '내 집'상점 앞 눈 치우기' 조례에 따른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고 있다.

행정 기관들은 폭설은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대구 8개 구'군청이 제정한 '건축물관리자의 제설 및 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는 눈이 그친 후 4시간 이내 상가 소유자나 관리인 또는 주택 소유자가 제설 작업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초기 제설 작업에 실패하면 한파로 눈이 얼어붙어 이번처럼 사태를 키우기 십상이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제설 작업과 달리 두꺼운 얼음을 깨는 제빙 작업에 주민들이 선뜻 앞장서기는 어렵다. 얼음을 깰 수 있는 삽이나 곡괭이를 비치하고 있는 주택은 드문데도 주민센터에서 갖추고 있는 제설'제빙 장비라곤 빗자루와 눈삽 정도가 고작이다. 구'군청 제설'제빙 담당자들조차 "빙판길 민원에 아무런 대처 방안이 없다. 매뉴얼도, 장비도, 인력도 없다"며 "대구시에 대책을 건의하겠다"고 답답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기록적인 폭설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종합 대책과 제빙'제설 장비 보완을 서두르겠다"며 "행정기관과 시민들이 다 함께 눈 치우기에 동참할 수 있는 더 적극적인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준'신선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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