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발전소는 참으로 묘한 틈바구니에서 싹을 내밀었다.
1997년 담배 제조 공장이 멈춰 폐산업 유산으로 방치된 지 10여 년 만에 도심 재생이라는 미명 아래 등장한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이다. 대구시는 재정 여력이 없고, 민간 기업 KT&G는 뚜렷한 개발 콘셉트가 없어 손을 놓고 있던 사이, 옛 연초제조창과 인근이 슬럼가처럼 변하면서 급기야 '뭐라도 좀 해라'는 이 지역 주민의 청원이 그 시작이다.
연인원 50여만 명이 첫 삽을 뜨지도 않은 공간을 온갖 기대감 속에 찾았다. 신문 방송은 수백 차례에 걸친 사설, 칼럼을 통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문화예술인, 환경단체, 경제인, 언론인, 대학생 등 각계를 대표하는 2천여 명에 이르는 관련 전문가들도 현장을 확인했다. 세미나, 심포지엄, 강연을 비롯해 대규모 전시 이벤트, 공연 등 테스팅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언론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문화창조발전소 조성 사업을 그해의 10대 뉴스로 선정, '대구 문화 행정의 백미'라고 적었다.
이처럼 문화창조발전소(이후 개칭:대구예술발전소)는 도심 재생의 신호탄이 되어 2008년 국가 시범 사업 확정 전후 뜨거운 호응과 함께 2년여 내내 지역을 달구었다.
오는 3월 개관을 앞둔 시점에서 기대감을 잠시 가라앉히며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당시의 엄청난 열기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를 생각해 본다.
설렘으로 다가온 문화창조발전소 국가 시범 사업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졌다.
우선 하드웨어의 확장 즉 공간을 넓혀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운영을 통한 산업 유산의 재창조 효과 거두기이다. 문화창조발전소는 개관을 해도 큰 틀에서는 도심 재생의 과정에 속할 뿐이다. 왜냐하면 문화 공간 조성을 통한 도심 재생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공간 확장은 옛 연초제조창 본관 부지로의 확대를 말한다.
이 터에 남아있는 건물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기적 같은 건축물이다. 정방형으로 이뤄져 단순한 구조에다 4m 이상의 층고를 가진 국내 유일의 건축물로서의 기능적 가치를 지녔다. 국내 1호 담배 공장이면서 해방 전후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업 유산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터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반경1㎞ 안에 원삼국시대부터 근현대사의 역사 문화를 품은 지리적 가치가 그것이다. 이 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랜드마크적 의미도 가치 있다. 이 때문에 공간 확장은 우리가 살았던 곳을 재조명한다는 성숙된 도심 재생 문화의 초석을 놓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죽은 도심에 푸른 숨을 불어넣을 획기적 운영 방안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평가로만 본다면 제대로 된 전략가를 미리 뽑지 못했고, 건물의 정체성도 모호해졌고, 획기적인 프로그램도 없지 않으냐는 논란 속에 출발하게 된다는 점이다. '위탁이 좋다, 직영이 낫다, 둘을 좀 버무려야 된다'는 등 벌써 편 갈린 듯한 이야기가 오간다. 문화예술계 라인에 있는 1%와 99% 시민들이 함께 향유할 공간임을 유념해야 한다. 한 번 정한 방식을 밀고 나갈 게 아니라 한시적 단위로 평가해보면서 운영 방식을 검증하는 건 어떨까. 중장기적 안목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기구가 마련되면 좋겠다.
결국은 자생력 아니겠는가.
2009년 가을, 수창동 연초제조창을 찾은 도시컨설팅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의 '찰스 랜드리'(Carles Landry)의 고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폐산업 유산을 활용한 첫 시도, 흥미로운 조성 과정 등으로 볼 때 이 공간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성공한 지역의 조그만 미술관 대표의 진단도 돋보인다. '장소가 탁월하니 사람들만 모으면 되겠네.' 맞는 말이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가능하다는 전제이다.
연초제조창 옛 터를 두고 저명 건축가는 '터 무늬'가 있다고 했고, 필자와 함께 문화창조발전소 유치를 주도해 온 선배는 이 땅의 '운명'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름 해석해 보건대 '터 무늬'가 과거 이미지를 말한다면, '운명'은 그 터의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터의 과거와 미래는 어쩌면 현재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5년여 만에 맞는 개관을 앞두고 용두사미가 아니길 기대한다.
이권희/문화산업전문기업 ㈜ATB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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