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한국 골프의 기대주 대구 출신 프로골퍼 배상문

그저그런 재능에 연습독종도 아닌 나…되레 부담 적어 위기에도 '무심의

"PGA 정상에 오르겠습니다." 배상문 선수의 각오는 남다르다.

'땡그랑'.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를 따라 처음 가본 골프장에서 공이 굴러 홀컵에 들어가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홀컵 속에 공 떨어지는 소리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일 겁니다. 듣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찌리릿' 흘렀지요. 한번 이 소리에 맛을 들이고 나니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진 소년은 좋아하던 야구를 그만두고 골프채를 손에 잡았다. 꾸준한 연습은 그를 더욱 성장시켰고 프로 전향 이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0년 일본투어에 진출해 일본 골프계를 평정하고 지난해에는 미국 프로골프에 진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한국 골프계의 차세대 주자로 평가받는 배상문(28) 선수가 잠시 고향인 대구를 찾았다. 그의 집을 방문해 골프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대구 사나이

"지난해 PGA(미국프로골프협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못해 아쉽습니다." 자택에서 만난 배 선수가 기자에게 던진 첫 마디는 무뚝뚝했다. 인터뷰 내내 굵직하면서도 투박한 사투리, 뚝뚝 짧게 끊어지는 대답, 잘생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투박한 말투가 천생 대구 사나이다.

지난해 데뷔한 PGA의 성적에 대해 배상문은 만족도 불만도 없이 쿨하게 인정했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데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낯선 미국 땅에서의 선수생활은 한국과 일본에서의 생활과는 딴판이었다. 실제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단다. "시즌 내내 혼자 투어를 다니다 보니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늘 바빴는데 오히려 바쁠 시간이 없어서 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나이지만 그렇다고 성적에 대해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평생을 해야 할 골프이기 때문이다. "미국 진출 후 첫 승에 대한 기대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첫 승에 집착하다 1승하고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는 것보다는 PGA 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오랫동안 내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발동이 좀 늦게 걸립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성공할 겁니다." 짧고 굵게 하는 것보다 길고 굵게 하고 싶다는 포부다.

"세계에서 수많은 골프선수가 있지만 PGA에 진출하는 선수는 200여 명에 불과합니다. 힘들게 미국 진출에 성공한 만큼 최대한 롱런하고 싶어요." 롱런이 목표이지만 그가 우승 소식을 들려줄 날이 머잖을 것 같다. "미국 진출 두 번째 시즌인 만큼 내가 누군지 이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싶습니다. 지금껏 많은 경기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경기에서 운이 따라줘서 우승했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운이 따라줬지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한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자수성가형 골퍼

배상문은 자수성가형 골퍼다. 입문이 남들처럼 빠른 것도 아니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골프를 배웠다. 유년시절 받은 레슨은 고작 1년에 불과했다. 거의 혼자 연습하고 연구해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 골프채를 잡은 후에도 골프 신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니어 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은 것도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남들만큼 치는 평범한 선수였다.

"골프를 잘한다기보다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원래 꿈은 야구선수였지요. 이승엽 선수를 좋아해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게 소원이었는데 대신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죠." 어머니 시옥희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상문이는 일곱 살 때부터 야구에 푹 빠졌어요. 야구나 골프보다 더 재능이 있었던 건 스키였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채를 한번 휘둘러 봤는데 재미있었던 모양이에요." 친구따라 강남 간 게 아니라 엄마따라 골프장 갔다가 골퍼라는 천직을 갖게 된 셈이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가고 싶다며 매일 어머니에게 떼를 썼던 어린이 배상문은 골프채를 잡은 후로는 더 이상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죽어라 연습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연습은 안 했어요. 솔직히 저 하루에 공 1천 개 이상 쳐본 적도 없어요." 다만 물 흐르듯 골프를 받아들인 것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란다.

"골프는 집중력이 생명이지요. 골프가 잘 안 된다고 '와 이카노'라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시합 때 느끼는 긴장과 불안까지도 그냥 받아들이죠. 그러면 불안과 긴장, 짜증까지 물에 흘려보내고 골프 자체에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지 않아 부담도 적은 편이라 오히려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불연(佛緣)과 어머니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골프 역시 상대방과의 싸움 이전에 자신을 이겨야 하고 매순간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경기를 잘 풀어나가더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승패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 선수들 가운데는 유독 불자(佛者)가 많다. 혼자 수행하듯 경기에 임하는 골프의 특성이 불교의 특성과 닮아서다.

배 선수도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대구 집도 '정토사'라는 절과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에게 고향집은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

시합 때도 경기력 향상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힘이 된다.

"일단 필드에 서면 골프에만 집중을 하고 제 마음을 컨트롤하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경기에 임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많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중을 한다는 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수행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해 준 가장 큰 버팀목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 샷, 한 샷 신중을 기했고 스코어를 줄여나가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했지요. 우승으로 보답하겠노라고 말버릇처럼 했던 말이 10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현실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우승으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웃돕기성금 1천만원 선뜻 '기부천사' 배상문…2013시즌 목표는

그에게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까지 10번 정도 우승컵을 차지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에서 두 달 사이에 우승컵을 세 번이나 들어 올렸던 일이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때의 느낌과 기분이 이후 선수생활에 큰 자산이 됐습니다."

배상문은 나눔을 적극 설천하고 있다. 2008년부터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장학금 지원이나 척추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 유니세프 활동 등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교계 공익법인 '아름다운 동행'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고 지난 연말에는 대구공동모금회에 이웃사랑 성금 1천만원을 기탁했다. "나눔도 실천하면 할수록 점점 중독이 되는 것 같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작은 도움으로 많은 분들이 행복해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2013년 목표와 각오도 남다르다. PGA 정상에 오르는 것이 배 선수의 목표다. "투어 2년차인 만큼 곁눈질할 틈이 없습니다. PGA투어에 올인한 상태입니다."

PGA투어의 성공이 절박한 이유는 또 있다. 군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 심란해지는 병역문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로 풀 생각입니다. PGA투어에서 죽어라 열심히 해서 올림픽 대표로 출전해 꼭 금메달을 목에 걸겠습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배상문은=대구 출신. 효명초교와 수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때 서울로 유학갔다. 2003년 8월, 17세에 프로로 전향했다. 2006년 한국투어 에머슨 퍼시픽 그룹오픈에서 첫 승을 올리고, 2007년 한국에서 개최된 아시안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했다. 2008년에는 한국오픈, 그리고 2009년에는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적으로 2008년, 2009년 한국투어 상금왕이 됐다. 2010년부터 일본투어에 참전해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8월 KBC 오거스타 골프 토너먼트, 9월 코카콜라 동해 클래식에서 승리하고 10월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경기에서 일본 메이저 첫 우승을 이루는 등 일본대회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왕과 최우수 선수상을 차지했다. 2011년 12월 PGA투어에서 11위 타이로 마무리해 투어 출전권을 획득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