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얗게 질린 대구의 겨울, 훗날 그 기억의 색깔은?

수십년 만의 폭설·한파 속 겨울나기

12.5㎝의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진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대구 도심 교통이 마비됐다. 매일신문 DB
12.5㎝의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진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대구 도심 교통이 마비됐다. 매일신문 DB
물을 묻혀 창문에 붙이면 난방비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포장용 에어캡.
물을 묻혀 창문에 붙이면 난방비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포장용 에어캡.
온열 슬리퍼
온열 슬리퍼
온열 마우스 패드
온열 마우스 패드

이번 겨울. 대구에 눈이 참 많이 왔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도심은 커다란 '빙판장'이 됐다. 졸지에 '에스키모'가 된 시민들은 '펭귄'걸음으로 얼음 위를 다니다 미끄러지고 다치기 일쑤였다. 이를 그냥 볼 수 없어 제설'제빙 작업을 펼치느라 민'관 가릴 것 없이 수고했다. 금요일마다 연이은 폭설에 발이 묶인 주말부부와 타향살이들은 애달프고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눈 구경하기 힘들었던 아이들은 오랜만에 눈사람도 만들고, 얼음썰매도 타며 신이 났다. 그랬다. 혹한에도 대구는 복작대며 사람 사는 곳이었다.

◆60년 만의 폭설, 40년 만의 한파

대구에 60년 만의 폭설이 쏟아졌다. 대구기상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대구에 내린 눈이 기록한 적설량은 12.5㎝. 1952년 12월 9일(23.5㎝) 이후 최대치였다. 눈 풍년(?)의 조짐이었을까. 첫눈도 빨랐다. 지난해 11월 26일 대구에 첫눈이 내렸고, 이는 작년보다 36일 빨라진 것이었다. 이후 대구에는 첫눈을 포함해 모두 9차례 눈이 왔고, 공식 집계는 안 됐지만 횟수나 누적 적설량 모두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40년 만의 한파도 들이닥쳤다. 이달 3일 대구의 최저기온은 영하 10.3℃를 기록했다. 1973년 이후 1월 상순 기온으로는 최저치였다. 찬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졌고, 쌓이고 녹지 않은 눈과 빙판 때문에 복사냉각이 더해지면서 한낮에도 최고기온이 영하 4.2도(이달 3일)에 그치는 등 1월 내내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이 밝힌 올겨울 잦은 폭설과 한파의 원인은 요즘 거의 모든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의 주범 '지구온난화'다.

◆도심 빙판길에 낙상 사고 잇따라

한파와 폭설만 기록을 갈아치웠다면 다행이었을 것.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으며 유례없이 도심 곳곳에 빙판길이 깔렸고, 크고 작은 낙상 사고가 이어졌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매주 눈이 내린 지난해 12월에 접수된 낙상사고만 1천150여 건으로 하루 평균 37건이었다고 밝혔다. 2011년 하루 평균 16건이었던 것의 2배를 넘는다. 주로 노약자'여성'어린이들이 손목'척추'골반을 다친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지체장애 3급 40대 여성이 빙판으로 변한 골목길을 걷다 넘어져 머리를 부딪치고 의식을 잃었고, 곧장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이달 7일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10일 대구시와 8개 구'군은 골목길과 이면도로 등을 찾아 대대적인 제설'제빙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동장군이 들이닥치면 늘 서민들을 괴롭히는 것이 수도 계량기 동파 사고다. 하지만 올해는 미리 대비해 사고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가장 추웠던 이달 초부터 중순까지의 동파 접수 건수는 10여 건에 불과하고,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도 모두 30여 건에 불과했다. 이는 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수도시설에 보온 조치를 하고, 동파방지용 개량형 수도계량기 설치 및 구형 계량기에 대한 보온재 설치 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혹한에 참 바빴던 대구

한파에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면 특수를 적잖게 누리는 곳이 있다. 중화요리점과 치킨'피자 등 외식 배달업체다. 하지만 예년 겨울과 달리 빙판길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늦추면서 올겨울 울상을 짓고 있는 업소가 많다. 대구 북구의 한 치킨 배달업체 주인 황모(43) 씨는 "낮에는 어떻게든 배달을 할 수 있지만 주문이 몰리는 어두운 저녁 시간에는 빙판길을 피해 가기 힘들어 애로가 많다. 물론 주문량이 10~20% 정도 늘기는 했지만 그만큼 배달원들이 추위에 떨어야 해 특수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푸념했다.

야외에 노출된 전통시장은 추운 날씨에 늘 타격을 입고, 강추위가 몰아친 올겨울은 더욱 울상이다. 대구 북구 칠성시장 상인 김모(52'여) 씨는 "한파에 손님이 줄어든 것도 있고, 폭설에 작황이 부진한 채소와 조업이 어려워진 수산물 가격이 함께 뛰면서 구입을 꺼리는 손님이 늘었다. 1월 중순 이후 날씨가 풀리면서 손님들 발길이 조금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폭등한 농'수산물 가격은 당분간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파가 이어지면서 바빠진 곳도 적잖다. 기록적인 추위에 세탁기'보일러'하수도 배관 등이 잇따라 고장 나면서 관련 수리업체와 애프터서비스센터 곳곳이 바빠졌다. 주부 황모(34'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이전에는 발코니에 있는 세탁기의 급수 배관이 얼어도 알아서 해결했다. 하지만 올겨울에는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며 도저히 손을 못 써 애프터서비스 기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의 한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센터 관계자는 "한파가 몰아치면 보통 하루 이틀 정도만 20~30건 정도의 수리 신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올겨울은 영하의 기온이 계속 이어지면서 수리 신청이 매일 수건씩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방한용품은 혹한 맞춤형으로 종류가 다양해졌고, 매출도 올랐다. 전기장판'온열기'핫팩'패딩 등은 매출이 오른 전통적인 방한용품. 이에 더해 물을 묻혀 창문에 붙이면 최대 30%의 난방비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정보가 퍼진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과 강력 자석을 사용해 창문에 착 달라붙어 외풍을 차단하는 '자석방풍막' 등 이색 방한용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한파에도 매정(?)하게 영상 20도 이하로 실내온도를 제한하는 사무실에서 쓴다며 컴퓨터 USB포트에 꽂아 쓰는 온열 슬리퍼'키보드 쿠션'마우스 패드 등 아이디어 제품도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결국 서민들은 이런저런 겨울나기 비용이 늘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직장인 장모(30) 씨는 "올해 스노체인과 폭설대비 하이브리드 와이퍼를 처음으로 구입했고, 빙판길에 접촉 사고도 한 차례 겪었다. 한파에 차량 배터리가 방전돼 카센터 신세도 졌다. 아낀다고 아꼈지만 곧 청구될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도 상당할 것 같다"고 했다.

◆주말부부는 울고, 동심은 웃어

서울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이모(31) 씨에게 지난해 12월은 참 애달픈 시기였다. 매주 금요일 4주 연속으로 눈이 내린 전국적인 '설금'(雪金) 현상에 발이 묶여 대구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아내와 한 달간 '생이별'을 했기 때문.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혼인 이 씨는 "도로가 눈으로 뒤덮여 승용차를 몰고 갈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안 그래도 주말이라 구하기 힘든 KTX 표는 눈발이 보이자마자 매진되기 일쑤였다. 나 말고도 근 한 달간 생이별한 신혼 주말부부가 전국적으로 허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요일에 쌓인 눈이 다음 주 월요일만 되면 금방 사라지는 모습을 연거푸 보고는 같은 처지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소주잔을 부딪치며 "왜 하필 금요일에"라고 한탄했단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얗게 변한 세상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특히 지역의 웬만한 저수지와 못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주말마다 얼음썰매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이용객이 몰렸다. 신천둔치 얼음썰매장과 달성군 화원읍 천내천 얼음썰매장 등 전통적인 얼음썰매 명소는 물론 이달 3일 첫 개장한 수성구 진밭골 입구 대덕지 얼음썰매장에도 인파가 몰렸다. 대덕지 얼음썰매장은 지난해 말 수성구청이 못을 정비해 올해 첫 개장한 곳이다. 수성구청에 따르면 도심과 가까운 이점으로 개장 후 첫 주말이었던 5, 6일에 1천500여 명이 몰렸고, 현재까지 3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용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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