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품은 애틋하고 열렬한 마음을 다해서 말이에요. 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나고 나서니 이 무슨 장난 같은 일인지 모르겠어요. 지난해, 연애소설의 주인공처럼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그를 온통 그리고 온전히 앓았지요. 참 촌스럽게도 그의 조각상 앞에 가서 눈빛의 대화도 나누었지요. '사랑한다'고 뒤늦은 고백도 했어요.
그를 처음 만난 건 1987년쯤인가로 기억되네요.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연도조차 가물거리는군요. 서울 대학로에서였지요.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시대, 대학로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속 군중이었던 나는 국가 폭력에 항의하는 민주 연사들의 발언 이후에 들려오는 노래에 가슴이 멎는 듯했어요.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함성마저 잠재운 그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였어요. 그의 노래는 어떤 연사의 목소리보다도 뜨거웠지요. 듣는 이들의 가슴을 치열하게 했으며 눈에서는 알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이 고였어요. 그건 한 마디의 구호보다 더 강한 노래의 힘이었고 그가 불렀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리곤 1990년이었던가요?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온 그를 두 번째로 대면했어요.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기다려줘' 이런 노래를 불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듣는 내내 가슴이 떨렸어요. 마치 짝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는 듯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할까요? 그런 감정 느끼신 적 있으세요? 그날 콘서트의 주인공은 기분이 별로였을 거예요. 그 감정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게스트 무대가 더 열광적이었고, 끊임없는 앙코르 요청으로 2곡을 더 불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으니까요.
그래서인가요? 그는 늘 노래를 부르며 늙어갈 줄 알았지요.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고 느낀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늘 웃고 있었으니까요. 자주는 아니지만 방송을 통해 본 그의 모습이 그랬어요. '한번쯤 그의 콘서트에 가야지' 마음먹다가도 일이 생기곤 해서 가지 못했는데, 그럴 때도 '그는 콘서트를 자주 하니까 나중에 가야겠다' 하고 뒤로 미루곤 했었지요.
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순간 곁에서 사라졌다면 얼마나 허망할까요? 그는 참 많은 사람에게 그런 슬픔을 던져주고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지요.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살아가는 힘을 얻는데 정작 자신은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진작 그의 콘서트에 가서 '당신의 노래를 사랑한다'고 박수 쳐주지 못한, 뒤늦은 후회를 했지요.
그런데 25년 만에 그가 다시 내 가슴속으로 찾아왔어요. 어느 영화에서 나온 넋두리처럼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우리 광석이를 위해 딱 한잔하자"는 아쉬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뒤섞으며, 이번엔 그의 콘서트처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와의 시간을 기쁘게 받아들였지요.
그렇게 지난해, 11월부터 내내 그의 안에 살았어요. 그가 대구 사람이고 태어난 곳이 중구 대봉동이니 그의 추억길이 그려진 방천시장에 둥지를 틀었지요.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방천시장의 상인 어르신들, 입주 작가분들도 따뜻이 사랑해주셨고, 없는 돈에 고생한다며 지역의 언론들도 기꺼이 도움을 주셨지요. 그렇게 올린 어쿠스틱 뮤지컬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무사히 끝났네요. 그의 기일인 올해 1월 6일에는 다시 그를 보내줘야 했으니까요.
사랑의 열병이 그렇듯 지나가고 나니 그 흔적이 곳곳에 꽃처럼 남아있네요. 그 꽃들이 그의 고향 대구에 어떻게 뿌리를 내릴까요? 문화 콘텐츠가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아이콘이 되는 시대니까 그를 그렇게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까요? 아니면 그냥 벽화길을 방천시장의 명물로만 이어갈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올해 서울 기획사에서 만든다는 그의 노래를 담아낸 대형 뮤지컬을 비싼 로열티를 주고 가져올까요?
그런데요. 이것저것 다 뒤로 접어두고 그와 그의 노래가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다시 서더라도 절대 지켜져야 할 것이 있어요.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그의 노랫말처럼, 그냥 순수하게 그의 노래가 여전히 세상살이에 지치고 아프고 상처입고 힘겨운 사람들의 가슴을 치유해주는 힘이고 삶이기를 바라는 거죠. 그의 순수와 진실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나 할까요? 2013년 대구에서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문화 콘텐츠라는 새로운 바람으로 불어온다면 꼭 그것만은 지켜달라는 거지요. 그의 노래는 소중하고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니까요.
권미강/경북작가회의 회원
이번 주부터 권미강 경북작가회의 회원의 글을 4주에 한 번씩 본 난에 싣습니다. 필자는 15년 동안 칠곡군청'구미시청 등에서 공직 생활을 거친 뒤 문화 기획자로 변신, 어쿠스틱 뮤지컬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마케팅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