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샛별과 멘토 세대공감] 제자 테너 권재희 씨와 스승 바리톤 노운병 교수

"음악 앞에 움츠러져…어쩌죠"…"라 스칼라 오디션 통과 대단해"

◆바리톤 노운병(44)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졸업한 뒤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카를로 베르곤지 아카데미를 전액장학생으로 졸업했다. 비옷티 발세지아 국제콩쿠르 우승 등 국제콩쿠르 입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인 카를로 베르곤지, 안드레아 보첼리, 살바토레 리치트라, 정명훈, 로마노 간돌피 등 함께 연주를 했다. 현재는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리톤 노운병(44)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졸업한 뒤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카를로 베르곤지 아카데미를 전액장학생으로 졸업했다. 비옷티 발세지아 국제콩쿠르 우승 등 국제콩쿠르 입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인 카를로 베르곤지, 안드레아 보첼리, 살바토레 리치트라, 정명훈, 로마노 간돌피 등 함께 연주를 했다. 현재는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테너 권재희(31)는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졸업한 뒤 로마 A.I.D.M 아카데미 장학생 디플로마를 거쳐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 최고연주자 과정 디플로마에 있으며, 로마 A.I.D.M 아카데미 장학생 선발 콩쿠르 성악부문 1위 및 전체 대상, 제15회 프란체스코 알바네제 국제콩쿠르 특별상, 독일 스텔라 마리스 국제콩쿠르 입상, 제18회 줄리에타 시미오나토 국제콩쿠르 1위 등 굵직한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윤조기자
◆테너 권재희(31)는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졸업한 뒤 로마 A.I.D.M 아카데미 장학생 디플로마를 거쳐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 최고연주자 과정 디플로마에 있으며, 로마 A.I.D.M 아카데미 장학생 선발 콩쿠르 성악부문 1위 및 전체 대상, 제15회 프란체스코 알바네제 국제콩쿠르 특별상, 독일 스텔라 마리스 국제콩쿠르 입상, 제18회 줄리에타 시미오나토 국제콩쿠르 1위 등 굵직한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윤조기자

경북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중인 노운병 교수(바리톤)와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 중인 테너 권재희 씨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경북대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김정웅 교수에게 사사를 받은 선후배 사이면서, 동시에 재희 씨의 대학 시절 사제 간이기도 하다. 더구나 밀라노에서 유학하면서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는 공통점도 있고, 피아니스트를 아내로 뒀다는 점도 똑같다. 이런 그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었다. 노 교수는 재희 씨에 대해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후배"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재희 씨는 "열심히 노력해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그의 조언에 귀 기울였다.

◆왜 음악의 길을 택했나?

▷노운병(이하 노)=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고, 중학교 때는 클래식에 푹 빠져 살았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성악가가 되겠다고 맘을 먹었다. 프랑크 코넬리가 부른 토스카에서 고음을 가늘고 길게 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코넬리의 음악이 발성적으로 무거워 잘 안듣지만, 어쨌든 어릴 때는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며 인상적으로 와 닿았고, 나도 성악가의 길을 걸어 제대로 노래를 한 번 불러보겠다고 결심했다.

▷권재희(이하 권)=안동 출신으로 유교적 색채가 짙은 가정에서 자랐다. 지금도 할아버지는 갓 쓰고 도포를 입으시는 유학자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음악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피아노도 배우고 바이올린과 색소폰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졌다. 중학교 선생님이 서울예고 진학을 권유했지만 포기하고 인문계로 진학했는데, 고교 선생님이 다시 음악을 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때는 정말 다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힘이 되어 주셨다. "니가 좋아하는 것, 꿈을 쫓아가는 생을 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

◆노래란,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가?

▷노=꿈을 쫓던 시절에는 도달하고 싶은 꿈의 대상이었다. 어렵고 붙잡기 힘든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을 약간은 이해할 것 같다. 무대라는 것이 항상 떨리고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지만 그런 느낌이 있어 관객과의 교감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권=저는 선생님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재미로 무턱대고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점점 노래가, 그리고 음악이 어려워지고 있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어릴 때처럼 마냥 기쁘기보다는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음악이라는 존재 앞에 섰을 때 점점 작아만 지는 나를 느낀다.

◆유학 생활은 힘들지 않았나?

▷노=밀라노에서 7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향수를 느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잘 지냈다. 오히려 한국에 돌아온 뒤 가끔 이탈리아에 대한 향수를 앓는다. 당시 피아니스트였던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는 재희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유학을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4년을 지내는 동안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노 교수님 말씀처럼 아내가 든든하게 곁을 받쳐주고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오히려 유학 생활이 나태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 음악적인 발전에 매진할 수 있어 좋다.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동양인에 대한 벽 같은 것을 느낀 적은 없나?

▷노=이탈리아에서 좋았던 점은 실력에 대한 평가가 있을 뿐이지 편견은 없다는 것이었다. 실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다만 이탈리아 사람의 정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온전히 내가 이탈리아 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눈을 감고 들었을 때 이탈리아 사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이탈리아인의 발음으로 느껴지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한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주로 어떤 준비를 하나?

▷권=유산소운동 중심으로 운동을 한다. 딱딱한 근육이 노래를 하는데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근육운동은 피하는 편이다. 연주가 임박해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게 마련이다. 공연이 삶의 무게로 느껴지고, 잘 하려 기를 쓰면 쓸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노=성악가들은 체력이 타고나야 한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몸이 피곤하다 보면 목에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수도사적인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음악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많지만 워낙 시장이 좁다 보니 현실은 녹록치 않다.

▷권=수많은 유학생들이 '성공'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내가 연주를 한 번 더 하게 되는 일이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경우도 생긴다. 미래를 생각했을 때 가끔은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현실과 음악가로서의 이상이 저울질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꿈꾸는 것은 '오페라 가수'로 무대에 서는 일이다. 이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노=현실은 어렵지만 조금은 긍정적으로 본다. 대구라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서울도 부러워할 만한 무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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