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 20년차 이모(46'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지난해 추석 이후 시댁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이 씨는 명절이면 장사까지 접고 가장 먼저 시댁으로 달려가 일손을 거들었다. 매번 명절 마지막 날 오는 시누이맞이에 친정 나들이는 꿈도 못 꿨다. 억울함, 섭섭함이 밀려들었지만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명절맞이 준비를 했었다. 쌓아둔 울분이 터지게 된 것은 지난해 추석. 1년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안 대소사를 나 몰라라 하는 동서와 그런 동서를 두둔하면서 이 씨의 고생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댁의 태도가 화근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상하게 했던 건 남편의 말 한마디였다. 돌아오는 길에 속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놨지만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당연한 일에 생색낸다"는 것.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 이 씨는 "더 이상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날의 앙금으로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면 이 씨는 남편과 한바탕 싸움을 치르곤 했다. 이 씨는 "내가 원한 건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며 "더 이상 남편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혼까지 생각중이다"고 말했다.
온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설을 2주일가량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를 고민하는 부부들이 많다.
부부상담 전문기관에 따르면 명절 직후 부부 싸움이나 이혼 관련 상담이 2배 정도 증가한다. 상대방 부모에 대한 소홀함, 고된 가사노동, 친인척 간 비교 등은 부부싸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명절 부부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내도 남편도 명절 스트레스
오랫동안 명절 스트레스는 가사노동을 도맡았던 부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부부상담 전문가들은 명절 스트레스 장본인은 아내이지만 남편들도 만만찮은 고충을 가진다고 말했다.
아내와 남편이 받는 명절 스트레스의 시발점은 다르다. 대구복지상담교육원 김미애 교수는 "아내는 시댁 식구들과 마주치며 받은 감정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남편은 아내가 느낀 명절 스트레스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아내가 명절 스트레스의 1차 피해자라면 남편은 아내의 분풀이 대상으로 2차 피해자가 된다는 것.
아내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가사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감 못지않게 소외감, 열등감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 크다. 특히 친'인척들이 늘어놓는 경제력 자랑, 자식 자랑 등은 가까운 가족들 사이에서도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부인에게 시기심, 무력감, 열등감 등을 느끼게 한다. 이들 틈에서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스트레스가 된다.
묵혀둔 아내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비난과 책망으로 돌아간다. 김 교수는 "아내가 공격의 화살을 남편에게 던지면 남편은 아내가 가엾기보다는 무력감을 느껴 부인을 위로하지 않고 공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남편, 아내의 마음을 읽어라
남편은 귀향길에 오르기 전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릴 아내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네야 한다. 아내의 명절 가사노동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지 않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부탁을 하라는 것. "이번 설에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많이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당신이 수고 좀 해주세요"와 같은 남편의 말 한마디는 아내에게 힘든 가사노동을 버틸 힘이 되고, 남편에겐 부부싸움을 막을 보호막이 된다. 여기에 명절 기간 동안 "힘들지 않냐"는 등 위로가 더해지면 아내의 예민해진 기분을 한결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사)한국가족상담협회 대구중앙가족센터 김주하 원장은 남편이 아내에게 이러한 대화를 건넬 때 '적극적 경청-반영-공감-설명-동의 구하기'의 5단계 대화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아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귀담아듣고 "당신의 생각은 그랬군요. 힘들었을 것 같아요"라는 반영과 공감을 보인 뒤 명절날 자신의 역할과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 원장은 "남편들은 시댁에서 위치와 체면을 생각해 아내를 배려하기보다는 강압적으로 대하고 아내가 따라와 주기를 원한다"며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읽어주는 한마디만 하면 남편을 믿고 따라간다"고 조언했다.
◆아내는 남편의 어려움을 눈치 채지 못해
아내 역시 귀향길에 오르기 전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이 아내가 시댁에서 느끼는 섭섭함, 소외감, 고단함 등을 남편이 알아주길 원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남편에게 설명해야 한다. 김미애 교수는 "집에서는 가사일을 잘 돕던 남편도 명절 고향에 갈 때는 '집으로 간다'는 유아의 마음으로 가기 때문에 아내의 불편한 감정들을 눈치 채지 못할 수 있다"며 "아내는 남편에게 섭섭했던 부분과 대처 방안을 말하고 남편과 사전협상을 하면 남편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편하더라도 시댁과 잘 어울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댁에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남편을 무시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사노동으로 인한 피로감만큼 남편도 복잡한 귀향길 피로감과 아내와 시댁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공감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부부상담 전문기관 듀오라이프컨설팅 이미경 총괄 팀장은 "시댁에서 아내가 남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시댁 식구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느덧 친정에 잘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고 조언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명절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부부의 자세
▷남편이 아내에게
-따뜻한 말=귀향길 오르기 전 "명절마다 당신이 고생이 많네요. 미안하고 항상 고마워요."
-수시로 격려=틈틈이 부엌으로 건너가 "힘들죠. 도울 일이 없을까요?"
-팔불출 되기=가족 앞에서 한 번쯤 아내 자랑하기
-감사하기=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신 이번 명절에도 수고가 많았네요."
▷아내가 남편에게
-사전협상=귀향길 오르기 전, 남편에게 섭섭했던 부분과 처방까지 얘기하라.
-응원'감사하기="운전하느라 힘들었죠. 수고가 많네요, 당신."
-시댁 식구들과 어울리기= "우리 남편 이런 것도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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