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있는 고전은 늘 새롭게 고쳐 읽힌다. '온고지신'의 뜻처럼 문학 고전도 지난 경험과 오늘의 지점을 잇는 다리이다. '비참한 사람들'을 뜻하는 제목의 빅토르 위고 원작의 영화 레미제라블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혁명과 반발, 폭동의 격랑기인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여러 계층의 군상이 겪는 소망과 좌절의 경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수감되었던 장발장이 자베르 형사로부터 쫓기면서도 개과천선을 위해 고투하는 인생역정이 놓여 있다.
원작보다 압축적인 줄거리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현대화된 음악과 영화적 장치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주제를 응집하고 있다. 첫 장면의 장관과 결합한 박진감 있는 합창곡 '아래를 보라'의 멜로디 변주는 주제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독백조의 노래들과 함께 인물의 내면적 솔직함이 드러난 장면들은 관객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그중에서도 더욱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장발장이 혁명 중에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품에 안고 살려 달라고 기원하는, 부성애가 솟구치는 장면이다. 이어서 젊은 세대를 향한 안쓰러움의 발로로 하수구를 통과하는, 마리우스를 진 그 노년의 어깨에서 책임의식이 느껴지는 장면이 따라온다. 다른 하나는 형사 자베르가 자신이 혁명군에게 붙잡혔을 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장발장이 하수구에서 나오자 보은의 행위처럼 그를 놓아준 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장면이다. 이어서 번민하던 자베르는 법적 정의와 사랑의 딜레마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강물 위로 투신한다.
이처럼 레미제라블에서 대조적인 국면에 서는 두 인물은 역사적 변혁기의 다층적인 가치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장발장이 새 시대의 상징적 인물로 그려졌다고 해서 자베르가 혼돈의 죽음에 빠져든 것이 신념의 파멸만을 암시한 것도 아니다. 장발장이 내면에서 손쉽게 그 자신을 용서하려는 조건을 용납하지 않도록 장발장의 뒤를 쫓는 자베르적 시선은 선행과 상황을 불문하고 장발장에게 책임을 되묻는다. 무고한 자가 자신으로 오인 받자 신분을 밝히기로 결단한 장발장의 용기처럼, 자기 극복을 요구하는 상징적 의미로 자베르의 냉정한 시선은 오늘 우리 자신의 자기 응시의 그림자도 될 수 있다. 1862년 레미제라블이 출간될 당시 위고가 독자반응에 대해 "?"라고 묻자 대성공의 뜻으로 출판업자는 "!"라고 답신했다. 그때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지만, 고전은 새롭게 고쳐 읽힐 수 있는 것이기에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고전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장 두 현 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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