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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따뜻한 상징-정진규(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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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시집 『뼈에 대하여』(정음사, 1986)

지인의 블로그에서 이 시를 읽었다. 그녀는 서럽던 젊은 시절 어떤 달력 같은 데서 이 시를 오려 품고 다니며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이 시는 직접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인격체처럼, 아주 편하고 따뜻하고 고마운 존재였다"고 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서가를 정리하다 이 시를 다시 발견하곤 글을 올린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도 이 시로부터 위로를 받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 시는 1980년대 전반 무렵을 어둡고 추운 시절이라고 명토를 박는다. 밥 때문이 아니라 자유 같은 것 때문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춥고 어두운 밤을 건너가는 데는 "쌀 두어 됫박"만한 "따뜻한 상징"도 없다고 못을 박는다. 정신의 허기를 채우는 희망 같은 것이다. 그 밤을 서로 사랑하며 건너기만 하면 아침이 아니라 봄을 맞이할 거라는 믿음과 위로를 주는 시다. 거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상 차려져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시를 추워 떠는 사람들의 부뚜막에 '쌀 두어 됫박'의 '따뜻한 상징'으로 몰래 가져다 놓고 싶다. 그녀에게도 세상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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