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식민지 어둠의 등불, 박향림(상)

깜찍 발랄한 음색과 창법으로 우울한 시대 달래

여러분께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기억하시는지요?

그 영화의 주인공은 미남 배우 장동건과 원빈입니다. 그들의 행복했던 시절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배경음악도 함께 기억하시는지요?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라는 재미난 가사로 펼쳐지는 간드러진 노래의 목소리 주인공은 바로 박향림(朴響林)이라는 1930년대 인기가수랍니다. 그녀가 불렀던 '오빠는 풍각쟁이'란 노래이지요.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빠른 비트와 랩을 즐기는 요즘 세대에게는 상당히 촌스럽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느낌도 들게 하지만 코믹한 가사와 흥겨운 리듬은 그들의 감각에도 즐거움을 주었고, 심지어 노래방 애창곡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수십 년 전에 활동했었고, 그동안 완전히 잊힌 가수가 무덤 속에서 다시 환생하여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요는 그 시대 주민들의 마음속 풍경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고 합니다. 슬픔이면 슬픔, 기쁨이면 기쁨의 감정을 노래 속에 곡진하게 담아서 그 시대 사람들보다 먼저 대신하여 위로하며 고통을 분담해 줍니다. 그러므로 가요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작사가, 작곡가, 가수는 언제 어디서든 대중들의 눈빛과 마음을 기민하게 먼저 읽어야 하겠지요.

이제는 흘러간 일제강점기.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소할 곳도 바이없던 시절, 당시 우리 겨레는 가수의 노래를 유성기로 들으며 한과 쓰라림을 달랬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박향림은 깜찍하고 발랄한 음색과 창법으로 어둡고 우울하기만 했던 식민지의 어둠을 몰아내고, 잠시나마 밝은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었던 가수였습니다.

가수 박향림은 1921년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朱乙)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억별(박향림의 아명)의 나이 16세 되던 1937년, 주을온천에는 온통 서울에서 온 오케연주단(조선악극단)의 연주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이런 연주단이 도착하면 다음날부터 대표 출연진을 앞세워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선전을 했었는데, 주민들은 가슴이 설레어 그 뒤를 줄곧 따라다니곤 했답니다. 이를 보통 '마찌마와리'(町廻)라고 했습니다. 억별은 오케연주단의 구성진 마찌마와리 행렬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공연을 다 본 뒤 무대 뒤로 작곡가 박시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류가수가 되어서 어머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요."

이를 갸륵하게 생각한 박시춘은 그 자리에서 박억별의 노래솜씨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약간 동그스름한 얼굴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이 귀염성스러웠던 박억별은 억센 함경도 억양을 바탕으로 목소리도 마치 은쟁반에 옥을 굴리는 듯 낭랑하게 들려서 박시춘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오케연주단 이철 단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케레코드사엔 이미 이난영, 장세정, 이은파 등을 비롯한 최고 가수진들이 풍부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철 사장은 건성으로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이담에 서울 올 일이 있으면 한번 들러라.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이동순(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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