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낚시를 좋아한다. 낚시뿐 아니라 고기 잡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두루 해 보았다. 민물낚시는 붕어낚시가 일반적이지만 루어낚시와 피라미낚시가 역동적이어서 무척 재미있다. 바다낚시 중에서는 도다리 배낚시에 미치기도 했고, 감성돔을 낚기 위해 추자도를 비롯하여 남해의 유명 포인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낚시 외에도 투망질은 물론 배터리치기, 해머치기, 사발무지, 통발놓기 등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다녔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낚싯배를 타고 달리며 청새치 같은 큰 고기를 한 번 잡아 봤으면 하고 소원해 봤지만 그건 한갓 꿈이었다. 동해에는 청새치가 살지 않을뿐더러 그런 큰 고기를 낚을 장비와 낚싯대를 파는 곳이 없었다. 고인이 된 영화배우 최무룡은 방어 철이 되면 신나게 달리는 모터보트를 타고 울릉도 근해에서 트롤낚시로 큰 방어를 잡았다.
여름철 울릉도에 갈 때마다 유명 영화배우가 자주 즐겼던 '끄심바리낚시'라 부르는 트롤낚싯배를 얻어 타 볼까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봤지만 그런 행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청새치의 꿈은 아예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스펜서 트레이시가 산티아고 영감 역으로 나오는 '노인과 바다'란 영화는 몇 번을 보았는지 손가락이 약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다가 '구룡포만에 방어 떼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풍편에 듣고 몇몇 후배들과 함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갔다. 증권이 그렇고 부동산이 그렇듯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달려들면 막차이듯 방어 떼도 똑같았다. 이틀 전만 해도 낚아 올린 방어를 정부미 포대에 담았다던데 놈들은 삼바축제에 참가한 발가벗은 미녀들처럼 악대를 앞세우고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사라져 버린 후였다.
바다 위에는 삼바 가락의 나팔소리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문득 아그네스 발차란 여가수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란 애수에 젖은 노랫가락이 떠올랐다.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돌아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나만 역에 홀로 남았네'란 애절한 비음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아그네스가 부른 노래에 이렇게 가사를 바꿔 불러도 될 것 같았다. "방어 떼는 떠나고 병신 같은 우리만 방파제에 서있네."
성이 최 씨로 기억되는 선장이 "내일 아침 일찍 나가면 많이 잡을 수도 있을 거야"란 유혹에 훌렁 넘어가 당일치기가 1박 2일로 늘어졌다. 갯가 식당의 방 한 칸을 빌려 소주판을 벌였다. '혹시'는 '역시'로 곧잘 연결된다. 그 '혹시'가 '대박'으로 연결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혹시'란 놈은 존재의 가벼움이 깃털과 같은 놈이다. 그 가벼운 존재는 항상 불가능이란 바위벼랑에 붙어 있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한 것이다.
이튿날 새벽 출조도 '역시'로 끝났다. 우린 갯가 사람들이 횟거리로 취급하지 않는 삼치다랑어라는 똥똥하고 못생긴 고기 세 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마침 선장의 친구가 커다란 대물 삼치 한 마리를 헐값에 넘겨주는 바람에 싱싱한 삼치회로 늦은 아침을 포식할 수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삼치라고 하면 삼치구이만 생각하지만 낚시에 걸린 삼치를 바로 회를 뜨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함께 먹던 사람들이 여럿 죽어나가도 모를 정도로 기름기 많은 생선인 고등어, 꽁치, 갈치 등을 회로 먹으면 가히 문화재급이라고 칭송할 만하다.
구룡포 낚시 이후에도 끄심바리낚시에의 도전은 몇 번 더 계속됐지만 조과는 영 시원치 않았다. 그날 이후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 영감과 그의 풋내기 조수 마놀린이란 소년도 나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헤밍웨이여, 안녕. 최무룡도 굳바이"였다. 나의 낚시장 안에는 굵은 낚싯줄에 납덩이가 달려 있는 재래식 끄심바리낚시 도구가 "바다에는 언제가요"하고 물어 오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