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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거란 침입 물리친 귀주대첩 명장 강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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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초 고려는 거란과 대립각을 세웠다. 거란은 고려와 송(宋)나라와의 외교적 단절을 꾀하고 강동 6주를 되찾기 위해 고려를 3번이나 침공했다. 거란의 2차 침공 당시, 고려의 군신들은 항복하자고 주장했으나 강감찬만 반대했다. 강감찬은 왕(현종)이 남쪽으로 피신하고 거란과의 강화를 도모해 시간을 번 뒤 군사력을 키우자고 했다. 고려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여 거란군이 돌아가자 고려는 군사를 양성해 전쟁에 대비했다.

강감찬의 예상대로 거란은 다시 쳐들어왔다. 서기 1019년 정월, 거란의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이때 고려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막강한 군사력이었다. 당시 고려에는 20만 대군이 있었다. 강감찬이 이끄는 군대는 흥화진에서 강물을 쇠가죽으로 막아놨다가 터뜨려 적을 수장시키는 전법을 써 기선을 제압한다. 드디어 이해 오늘, 고려군과 거란군은 귀주 벌판에서 운명의 결전을 치른다. 고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풍향이 북쪽으로 바뀌는 순간 고려군은 거란군을 도륙했고 살아 도망친 거란군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역사는 이 날의 전투를 귀주대첩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광은 준비한 자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귀주대첩은 보여주고 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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