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박근혜 당선인과 육영수 여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보면서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국민들이 많다. 이는 육 여사가 그만큼 국민들의 뇌리 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싫어했던 인사들도 대체로 육 여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데 전력하고 청와대의 야당 역할을 자청하는 등 육 여사는 국모 역할을 수행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고교 교사이던 육 여사는 피란 온 대구에서 1950년 12월 12일 박정희 중령과 결혼했다. 이때 박 중령은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 당시로선 이혼남과 혼인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더욱이 육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은 충청도의 대부호 반열에 있었기 때문에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육 여사는 박 중령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어머니를 설득한 끝에 결혼해 대구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결혼식 주례는 당시 허억 대구시장이 맡았는데 신랑 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식장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1952년 오늘은 육 여사와 박 중령이 맏딸 박근혜 당선인을 낳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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