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뱀과 공포와 의술

'원한에 사무친 듯, 맹렬한 속도로 내 뒤를 쫓아오는 뱀은 운동장만 했다. 사납게 머리를 곧추세운 뱀 대가리는 여럿이었는데, 몸빛깔이 무당벌레 같았다. 먼지구름이 뱀 뒤로 소금 기둥처럼 솟구쳐 올랐다.' 박형준의 '공포를 낚다'라는 시의 서두 부분이다.

왜 뱀은 우리에게 공포감을 일으키고, 어떻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며, 뱀은 어떻게 의술을 상징하게 됐는가? 태고적 포유동물들은 파충류가 지배하던 환경에서 생존하고 자손을 양육해서 일부는 파충류들에게 생명을 잃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는 파충류들에게 방어적으로 집중하는 지각능력을 발달시켰다.

뱀을 보면 두려운 것은 이러한 태고적의 기억이 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뇌 측두엽 안쪽의 편도체(扁桃體)는 두려움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뱀 같은 무서운 동물을 보면 시신경을 따라서 시각센터에 갔다가 시각연합부위를 거쳐 편도체에 오고, 여기서 하나는 대상 피질(帶狀皮質)과 전전두 피질(前前頭 皮質)의 대뇌부로 가서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하나는 시상하부(視床下部)를 거쳐 뇌간(腦幹)의 여러 구조물과 연결해 혈압상승, 창백한 피부, 가쁜 숨 등의 신체반응을 일으킨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과 콜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미녀 콜로니스가 아폴론을 배반하고 인간인 한 남자에게 정을 준다. 아폴론은 대노하여 부정한 콜로니스를 활로 쏘아 죽이고 화장 당하는 그녀의 뱃속에서 태아를 끄집어내어 반인반마인 케이론에게 양육하도록 부탁한다. 케이론은 태아, 즉 아스클레피오스를 양육하며 약초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케이론을 능가하는 의술의 신이 된다. 그가 환자들을 치료하러 갈 때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녀서, 혹은 치료법을 환자들에게 알려줄 때 사자(使者)로 뱀을 사용해서, 뱀이 의술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뱀해인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다. 많은 사람이 새 정부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고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의료 환경이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더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크다.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을 일으키고 한 번씩 가슴을 벌떡거리게 한다. 손에 땀도 나게 하고 잠을 설치게도 한다. 뱀은 찬 동물로 냉철함과 지혜를 상징하고 허물을 벗는 혁신과 변화를 나타낸다. 새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할 것이다. 부디 뱀처럼 냉철한 머리로 지혜를 짜내어 일반 국민과 의료계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법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