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턱 높고 빈약한 의료, 백성들 무속신앙 의존

장승 =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은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대상인 동시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사진은 지금부터 110년 전인 1903년에 촬영한 것이다. (출처) 대구시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장승 =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은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대상인 동시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사진은 지금부터 110년 전인 1903년에 촬영한 것이다. (출처) 대구시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여제는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동네마다 지내는 동제를 통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극심한 전염병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사망자가 많았던 지역에서 귀신을 달래는 제사가 성행했다.

이처럼 무속신앙에 의존하는 모습은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지방의 공공의료는 빈약했고, 민간의료의 문턱은 높았다. 약재는 귀했고 의원을 만나기는 더 어려웠다. 병에 걸렸다고 한약을 몇 첩씩 지어먹거나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하는 모습은 드라마에나 나올 뿐이다.

백성들은 무당이나 판수를 찾아가 굿을 청했다. 판수는 점을 치거나 경문을 읽어 귀신을 부르고 쫓는 시각장애인을 일컫는 말이다. 시각장애가 없는 판수도 있었다.

판수는 무당과는 다르다. 대체로 무당은 여자이고, 판수는 남자다. 무당은 서서 춤을 추며 귀신들을 달래지만 판수는 앉아서 북을 두드리며 경문을 읽어 귀신을 부르거나 쫓는다.

특히 귀신을 쫓아 병을 낫게 하려는 병굿은 조선 후기 일반적 현상이 될 정도로 성행했다. '하멜표류기'에는 당시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병에 걸렸을 때 그 나라에서 자라는 약초를 먹는다. 서민들은 약초를 잘 모르고, 의원들은 높은 양반들이나 부를 수 있다. 그 때문에 그럴 만한 돈이 없는 서민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점쟁이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조선 사람들은 천연두 같은 질병은 악귀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중국 강남에서 오는 역신이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병을 퍼뜨린다고 생각했다. 귀신이 마을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무서운 장승을 세웠다.

하얀 흙으로 문밖이나 벽에다 손바닥을 그리는 것도 귀신을 막는 의미가 있었다. 소를 잡아 문간에 피를 뿌리거나 북을 울리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병을 몰고 다니는 역신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다. 부적을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조선 정조 때 함경도 관찰사인 이병모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방 사람들의 형편을 한탄해 이경화로 하여금 '광제비급'을 펴내게 했다.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1789년 3월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해온 뒤 그 지방의 풍토가 좋지 않아 질병이 많은 데다가 사람들마저 약을 믿지 않고 무당들을 믿어 그 피해가 심각함을 안타까워했다.' 책을 펴낸 경위에 맞게 광제비급에는 백성들이 함경도 산과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들을 어떻게 질병 치료에 쓰는지 다루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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