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매뉴얼은 없나요?

'한 명의 아이도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질 높은 배움을 보장하자.' 이것이 배움의 공동체 기본 철학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흔히 묻는 말이 있다. "매뉴얼은 없나요?"

이런 질문은 정해진 지침에 따라 실천하는 것에 익숙한 데서 나온다. 그러나 배움의 공동체는 매뉴얼이 아니라 철학이다. 철학을 중심으로 교사가 창조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은 틀에 박히지 않고, 교사와 학생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손우정의 '배움의 공동체' 중에서)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했다. 시합의 공정성을 위해 호랑이가 심판을 맡았다. 토끼는 저만큼 달려가고 있는데 거북이는 아직도 출발선 근처에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거북이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호랑이는 거북이를 업고 뛰었고, 간발의 차로 토끼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자 시합에서 진 토끼가 이의를 제기했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공정해야 할 심판이 시합에 개입했기 때문에 이 시합은 무효다'라고 말했다. 호랑이가 답했다. '내가 공정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이 시합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 시합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 달리기 선수인 토끼와 느림보인 거북이를 같은 조건에서 경쟁시킨 것은 잘못이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시합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이 시합은 무효다'라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매일 토끼의 생각과 호랑이의 생각이 싸운다. 이야기에는 분명히 거북이도 등장하는데 거북이의 생각이 표현될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거북이에겐 묻지도 않는다. 알고 보면 다수가 거북이일 텐데 거북이의 생각은 늘 언어 너머에서 머문다.

분명 현재 10대의 다수는 거북이다. '배움의 공동체'의 기본 철학은 거북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교육이다. 그런 교육이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10대를 넘어 20대, 30대가 되어도 소외되지 않은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교육의 중심은 수업이다. 수업에는 완벽한 매뉴얼이 없다. 당연히 행복한 수업에도 매뉴얼이 없다. 교사라는 직업은 교사 발령을 받고부터 사실상 다시 배워나가는 것이고, 교사라는 직업이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배우는 과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들어진 매뉴얼대로 수업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매 시간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것이 수업이다.

학습(學習)은 '학'(學)과 '습'(習)이 만난 말이다. '학'이 가르치는 사람 중심이라면 '습'은 배우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학습이 완성되지 않는다. '습'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배움의 공동체' 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풍경이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배움에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학'이 '습'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습'이 중심이 된 '학'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최근 수업 현장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 패러다임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음에도 교육 현장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의 주체들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것은 그들이 지닌 프레임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프레임의 주체들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하기 때문에 자신의 프레임을 고집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 또는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프레임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개별적인 삶의 질은 후퇴한다. 정책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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