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능과 비슷"…9급 공무원 준비하는 고교생들

사회·과학·수학 포함 공무원 학원 수강생 급증 "시험 감각 남아있을 때

대구시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고생이 4일 중구 동성로의 한국공무원학원에서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시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고생이 4일 중구 동성로의 한국공무원학원에서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우성희(가명'17) 양은 올 8월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지난해 말 공무원학원에 등록했다. 지난해 11월쯤 TV에서 올해 시행되는 공무원 시험 과목에 사회, 수학, 과학 과목이 추가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우 양은 장래희망이 공무원인 자신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겨울 방학 동안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에 선택과목으로 행정법총론과 사회 과목을 택했다. 행정법을 제외하면 학교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입시학원에 다니는 셈치고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전망이 밝지 않은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게 될 것 아니겠느냐"며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조금 더 고생하고 있지만, 대학 입학 후 진로와 취업을 고민하다가 출발이 늦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악의 취업난 속에 공무원 학원에 고교생이 몰리고 있다. 올해부터 9급 공무원 시험 과목에 고교 이수과목이 포함되면서 졸업을 앞둔 3학년 학생은 물론 고교 1, 2학년생들도 9급 공무원 응시를 노리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고교졸업자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시행되는 국가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의 시험과목 중 선택과목을 변경했다. 기존 전공과목에 고교 이수과목 3가지(사회'수학'과학)를 더해 시험에 응시하는 고교졸업자를 배려한 것이다. 공무원학원도 입시학원, 재수학원 등에서 강사를 초빙해 새로운 시험과목에 대비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처음 응시하는 학생은 새롭게 추가된 사회'과학'수학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시험과목이 변경되면서 기존 일정보다 2, 3개월 정도 미뤄져 올해 대구시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은 8월 24일, 7급은 10월 5일에 치러진다.

시험 과목에 고교 이수과목이 들어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부 고교생은 일찌감치 공무원학원이나 동영상 강좌를 등록해 입시와 공무원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기도 한다. 특히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12월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원을 찾는 고교생도 크게 늘어 겨울방학 직전이나 야간 강좌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상당수다. 대구시내 한 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 수강생의 2% 정도에 불과하던 고교생은 올 들어 15% 정도 됐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고3 학생 중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학원에 등록했다가 생각을 바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지난해 5, 6월 열린 공직박람회에서 공개된 예시문제를 보고 시험 난이도가 수학능력시험 난이도와 비슷하다고 여긴 것. 고교생 김모(18'대구 동구 불로동) 군은 "시험 과목이 겹치는데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며 "이과생이기 때문에 평소 자신 있는 수학, 과학 과목을 열심히 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모(17'대구 달성군 다사읍) 양도 "시험에 합격하면 휴직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7급이나 5급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다"며 "어차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텐데 수능 감각이 살아있을 때 시험에 응시하면 합격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수험생은 고교생 응시자가 달갑지 않다. 수험생 석모(27'대구 북구 대현동) 씨는 "시험과목이 바뀌고 조정점수제가 도입돼 혼란스러운데 학교에서 똑같은 공부를 하는 고교생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에게 밀릴까 봐 부담된다"고 말했다.

한국공무원학원 김정명 원장은 "올해 시험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시험과목이 변경돼도 수능과의 연계도, 조정점수 등 변수가 많아 고교생이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며 "고교생이든, 일반인 수험생이든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해야 합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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