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였던 동장군의 위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내려가는 수은주에 봄이 더욱 애타게 기다려진다. 급한 마음에 따뜻한 남쪽으로 미리 봄마중을 가봤다. 더디지만 남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절 변화가 느껴진다. 차창에 박히는 풍경이 서로 닮은 듯 달라진다. 대구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를 달려 거제도에 도착했다. 그곳 지인이 꽁꽁 싸맨 기자를 보고 "옷차림이 그게 뭐꼬"라고 한다. 거제도에는 어렴풋이 봄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지세포항
거제의 관문. 거가대교를 거치자 운전하는 내내 시야에서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30여 분을 달리자 지세포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둥그스레한 항아리를 닮았다. 호수보다 더 잔잔하고 고요하다. 지세포항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지심도.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고마운 섬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식물이름)에서 취했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지세포의 모습이 꼭 그렇다. 겨울철이 아닐 때도 푸른색이지만 겨울이면 더욱 푸른색을 띤단다. 쪽빛 바다다.
인근에는 조선해양문화관, 어촌민속전시관, 거제요트체험학교 등이 함께하고 있어 거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조선해양문화관은 세계 선박 역사'조선기술을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외형이 거대한 배를 닮았다. 겨울철 대부분의 전시관은 운영비가 걱정될 정도로 한산한 곳이 많다. 그러나 이곳은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소리로 깜짝 놀란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유아조선소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조선소 시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게 꾸며놓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문명 확장에 기여한 배와 배를 이용한 여러 민족 간의 문화교류가 한눈에 잡힌다. 유아조선소 외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코너, 입구의 대형 거북선이 이곳을 찾는 즐거움을 더한다.
여행에서는 자연경관이나 전시시설 못지않게 숙박도 중요하다. 지세포항에는 한옥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언덕에 위치한 펜션에서는 지세포항의 참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묵었다는 펜션에서 짐을 풀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
창가에 앉아 내려다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멀리 호수처럼 잔잔한 지세포항의 전경이 펼쳐지고 눈을 들면 옥녀봉이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다. 휘영청 솟아오른 달이 지세포 바다에 비쳐 살랑거린다.
◆동피랑 마을
통영 강구안에서 이어지는 골목 사이에 웅크린 벽화마을 동피랑은 미대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따뜻한 그림이 있는 마을이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비탈의 사투리)이라는 뜻. 지난해 대선 당시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TV토론에 나와 '선거운동기간 동안 가본 곳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곳'으로 추천했던 곳이다. 지세포항에서는 40여 분 거리지만 도로공사 중이어서 조금 더 걸린다.
마을 전체가 야외미술관이다. 주택가 담벼락 곳곳이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돼 있다. 중앙시장 뒷길을 따라 동피랑 골목을 굽이굽이 오르다 보면 다양한 벽화들이 반긴다. 단순히 벽화 몇 개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벤치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항구와 중앙시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기거했던 동피랑은 한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푸른 통영 21'이라는 예술단체가 나섰다.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공모전을 열었고 이 같은 뜻에 동참하기 위해 미술학도들이 몰려왔다. 이후 골목마다 그림을 꽃피워냈다. 예쁜 벽화들이 입소문 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통영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마을 언덕 중턱까지 오르면 통영 앞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경북 영천의 별별마을보다 규모나 작품성 면에서 다소 수준이 낮은 것 같지만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강구안으로 가서 통영의 유서 깊은 공간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중앙시장, 서호시장 등 통영의 대표적인 전통시장들 역시 강구안에 자리하고 있다.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시장은 뒤에는 동피랑을, 앞에는 강구안 포구를 두고 있다.
중앙시장에는 펄떡거리는 생선과 마른 생선들이 가득하다. 입구부터 줄지어 선 손님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물 반 사람 반'이다. 여객선터미널 방향의 서호시장에는 인근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모두 모인다. 즉석에서 막회를 맛볼 수도 있다. 도로 곳곳에 서 있는 야자수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가는 길=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간 후 거가대교를 통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30분 정도 빨리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2만원대의 통행료가 다소 부담스럽다. 거제에서 통영 가는 길은 통영시 입구 직선코스가 공사 중이라 통영시청 가기 전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는 우회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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