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윗집-아랫집은 이웃사촌, 대화로 층간소음 풀어요"

성서1차 영남우방타운 아파트주민모임…효목동 비둘기맨션 28년 공동체 문화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서1차 영남우방타운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서1차 영남우방타운 '배꽃마실통로모임' 회원들이 아파트 노인정에 모여 윷놀이를 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설 연휴기간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벌이던 40대가 30대 형제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고, 아래층 주민이 위층에 쳐들어가 인화성 물질이 든 병을 던졌다. 층간소음 때문에 도시 '공동체 문화'가 위협받고 있지만, 아파트 주민 간 정(情)을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문화를 가꿔가는 주민들과 층간소음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아파트도 있다.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서1차 영남우방타운="아파트 주민? 아니죠, 동네 친구죠."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서1차 영남우방타운에는 '배꽃마실통로모임'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초대회장인 한상근(57) 씨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지 15년이 됐지만 이사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피를 나눈 사촌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들이 있어서다. 모임의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씨는 반상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웃 간의 정을 나눌 기회마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서 모임을 만든다는 공고문을 게시판에 붙였다. 불참 시 벌금을 매기는 등 기존의 반상회가 가진 강제성을 버렸다. 10가구가 모였다. 모임이 활성화되자 회원들끼리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눴다. 김영문(50) 씨는 "모임에 나간 뒤 다른 회원으로부터 '명절, 여행 때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애완견이 끙끙하는 소리를 냈다'는 말을 듣고서야 애완견 소음으로 이웃이 고통받는다는 걸 알았다"며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을 이웃에게 어찌나 미안했던지 이번 설 연휴에는 강아지를 처가에 맡겼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파트를 떠난 회원들도 생겨났지만, 이들도 2개월에 한 번 모이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다. 회원 성낙인(58'경남 창녕군) 씨는 2011년 3월 가족을 남겨두고 귀농했다. 지난여름 통로모임 회원들은 농사일이 익숙지 않은 성 씨를 돕기 위해 창녕으로 떠났다. 마늘과 양파를 수확해주고, 껍질을 까는 것을 도운 것. 성 씨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인데 나서서 도와주니 아파트 주민을 넘어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대구 동구 효목동 비둘기맨션=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떠나온 뒤에도 유지되는 '반상회'도 있다. 1980년 입주한 대구 동구 효목동 비둘기맨션은 50가구도 안 되는 작은 아파트다. 이곳에 모여 살았던 신혼부부들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지만, 이들은 변한 것이 없다. 반상회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따로 모임을 만든 것은 1986년. 모임이 만들어진 지 28년째다. 비슷한 또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장에 같이 다니면서 "모임을 하나 해보자"는 말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이들 사이의 친목관계는 층간소음도 비켜갔다. 어른들의 잔소리에 기가 죽은 동네 아이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침대에서 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주민들은 예민하게 소음에 반응해 얼굴을 붉혔던 것을 서로 사과했다. 김영옥(58'여'달서구 월성동) 씨는 "뛰노는 아이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모임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그 사건이 있고 나서는 예민하던 어른들도 층간소음에 관용을 베풀기 시작했다"고 했다.

황말순(61'여'달서구 상인동) 씨도 "채무자에게 담보로 받아놓은 승용차를 구석진 곳에 장기간 주차해뒀는데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이 버려진 차인 줄 알고 차 위에서 장난을 쳤다"며 "차가 찌그러져서 크게 손해를 입었지만 모임에서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풀려서 '아이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웃고 넘어갔다"고 했다. 10가구에서 시작한 이 모임은 타지로 이사 가거나 직장에 다니느라 정기적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7가구가 이끌고 있다. 정해진 모임장소나 이름도 없이 2개월에 한 번 만나 식사를 하고 경조사 때 나서서 돕는 것이 전부다. 황 씨는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인연이 이렇게 깊고 오래갈 줄은 몰랐다"며 "뿔뿔이 흩어져 다른 지역에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30년 지기 친구들이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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