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108, 박정희, 母性(모성)

#지난해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 개표 직후 '숫자 516'이 화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득표율 51.6%를 두고 호사가들이 한바탕 입방아를 찧은 것이다. 박 당선인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게 된 계기인 5'16, 박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인 1961년 5월과 박 당선인이 당선을 확정 지은 2012년 12월까지 51년6개월 시간 차이가 나는 게 득표율 51.6%와 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또 다른 숫자 '108'을 눈여겨보거나 의미를 부여한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와대행(行) 티켓을 거머쥔 박 당선인과 패배한 문재인 후보 간의 표 차이는 정확히 108만496표였다. 총 유권자 4천50만7천842명 가운데 3천72만2천912명이 투표해 이 같은 1'2위 간 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108만 표 차이로 대선 승부가 갈렸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번뇌를 108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화려하고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수많은 번뇌와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이 108만 표 차이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은 그만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번뇌하고 고민해 달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이 수많은 번뇌와 고민을 통해 결단을 내리고 국정을 이끌어 가야 그에 반비례해 국민들의 번뇌와 고민이 줄어들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4년이 됐지만 그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보여준 대통령을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갖지 못했다. 그의 아류(亞流)에 그치고 말았거나 그를 비토하는 데 열을 올린 대통령들이 고작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생을 계기로 '박정희 시대'를 마무리할 기회를 갖게 됐다.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으로 진입게 한 토대를 쌓은 박정희 리더십을 이제 역사(歷史)로 잘 갈무리하고, 선진국에 걸맞은 대통령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박정희란 거인(巨人)은 편안히 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시대를 산 세대들이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안타까움' '미안함'과 같은 부채(負債) 의식도 이제는 털 수 있게 됐다.

10여 일 후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박 전 대통령은 빛이자 그늘이다. 선친의 후광(後光)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지만 아버지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책임도 갖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능가하기 쉽지 않겠지만 박 당선인에게 이 나라는 새로운 대통령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여성 특유의 '따뜻한 리더십'과 청렴결백함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응해 박근혜 당선인도 일찍부터 대선 과정에서 여성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한 바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권력투쟁보다 국민의 삶에 집중하고, 통합을 이뤄나가며 민생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특히 선거를 이틀 앞두고 방송된 마지막 공식 TV 연설에서는 "저에게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이 가족이고 국민 행복만이 제가 정치를 하는 유일한 이유다.… 항상 국민과 소통하면서 여러분의 삶을 제일 먼저 챙기고 여러분의 삶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만들어낼 우리 사회의 혁명적 변화, 기대가 되지 않느냐"는 발언도 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 '어머니의 마음으로'란 말이다. '모성(母性)의 리더십'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팍팍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 외롭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들을 보듬어 안고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려면 모성 리더십이 제격일 것이다. 대통령의 딸이었던 박근혜 당선인이 이제 대통령이 돼 어머니의 마음으로 춥고 배고프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한다. 모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대통령 리더십을 보여줄 여성 대통령의 취임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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