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사랑 대구자랑] <8>살기 좋은 날씨

태풍이 와도 가뭄이 와도 끄떡없는 축복받는 땅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비구름의 통과가 어려운 대구는 태풍, 폭설 등 자연재해가 적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은 도시이다. 앞산에서 대구 시내를 조망한 모습.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비구름의 통과가 어려운 대구는 태풍, 폭설 등 자연재해가 적은 하늘로부터 복을 받은 도시이다. 앞산에서 대구 시내를 조망한 모습.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가로수.
대구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가로수.

지난해 12월 28일 대구에 12.5㎝의 눈이 내렸다. 12월 기준으로는 60년 만에 최대 폭설이었다. 눈을 구경하기 어려운 도시였던 만큼 폭설로 인해 대구는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등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강원도 강릉, 경기도 파주 등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과 달리 대구의 제설 대책이 취약한 탓도 작용했다. 12.5cm의 눈에도 도시가 올 스톱되는 상황을 맞은 것을 뒤집어보면 대구는 기후(氣侯)에서 '혜택받은 도시'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폭설이 자주 내리지 않을 정도로 대구가 온순한 겨울 날씨를 가졌던 탓에 그만큼 폭설 대책이 허술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천혜의 날씨

잘 알다시피 대구는 전형적인 분지(盆地)다. 금오산~보현산에 이르는 산지와 가야산~비슬산~최정산~선의산~주사산~단석산에 이르는 산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 이 분지 넓은 평야 가운데에 대구가 자리 잡고 있다. 큰 솥과 같은 모양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대구는 분지기후를 갖고 있다. 산으로 인해 비구름의 통과가 어려워 비가 적고 건조하며,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춥다. 그렇기에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다. 대구의 연평균 기온은 13.7℃. 가장 더운 달인 8월의 평균기온은 26.1℃,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0.2℃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27.9mm에 불과하다. 분지기후 탓에 대구는 전국에서 더운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덥고 춥지만 분지기후로 인해 대구는 자연재해가 적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산 덕분에 바다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이 들어올 수 없는 덕분이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신라 신문왕 때 경주에서 대구로 천도하려고 한 것은 대구가 살 만한 곳이라는 증거"라며 "'택리지'에서도 대구는 상당히 너른 들판이 있다며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아무리 태풍이 와도 대구에 큰 피해가 없고, 가뭄이 와도 고갈된 적이 없으며 지진도 나지 않았다는 점 등은 대구가 기후에서 축복받은 도시라는 점을 입증한다는 게 전 교수의 얘기다.

◆다시 쓰는 분지론

대구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가운데 하나가 중 이른바 '분지론'(盆地論)이다. "대구는 분지여서 변화를 싫어한다" "대구는 분지적 사고 때문에 발전이 어렵다"는 등 툭하면 분지를 걸고넘어지는 것. '분지적 사고'에 파묻히면 발전이 없다며 대구의 사고(思考) 대전환을 촉구할 때에도 분지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100% 맞는 얘기는 아니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서울 역시 대표적인 분지도시이다. 그런데도 서울에 대해서는 분지여서 변화를 싫어한다거나 둔감하다고 지적하지는 않는다. 앞서 연재를 했듯이 대구는 대한민국을 이끈 리딩 코리아(Leading Korea)의 도시였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났고 근대화'산업화를 이끈 도시가 대구였다. 누구보다 변화를 앞장서 주도했다. 대구가 이 나라를, 시대 변화를 이끈 도시인 만큼 '분지여서 변화를 싫어한다'는 틀로 대구를 가둘 수 없다.

또한 대구는 일찍부터 낙동강이란 수로(水路)를 통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도시였다. 그 하나의 예가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를 들 수 있다. 1900년 3월 낙동강을 타고 사문진 나루(지금의 대구 달성군 화원)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왔다. 여기에 대구가 팔공산과 같은 명산을 가까이 갖게 된 것도 분지도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발전 용광로

산으로 둘러싸여 그릇 모양과 같은 것이 분지이다. 그릇을 닮은 분지에는 무엇인가 고이게 마련. 물이 그릇에 담기는 것처럼 분지에도 사람들이 담기게 되고 정신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고이는 것을 정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응축'(condensation'凝縮)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대구분지에 응축된 것이 바로 대구정신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대구정신의 토대를 분지란 자연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대구 사람들이 화끈하고 뜨거운 기질을 갖게 된 것도 분지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대구분지는 뜨거운 '용광로'(blast furnace'鎔鑛爐) 역할을 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대구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거나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한 것도 분지란 토양 위에서 나라 사랑 정신으로 똘똘 뭉친 덕분이다. 대구분지가 대구만의 독특한 문화, 정신을 낳은 용광로가 된 것이다. 이것이 국채보상운동과 2'28운동을 태동케 한 밑바탕이 됐다. 분지란 편협한 사고의 틀로 대구를 가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발현된 대구정신을 찾고 제대로 이어받는 것이 대구 발전의 또 다른 지름길이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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