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답답한 박근혜 정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의 유대인 도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부에 잡혀 예루살렘으로 압송됐다. 이듬해인 1961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아이히만의 홀로코스트 재판을 여성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지켜보았다. 하이데거의 제자로 한때 야스퍼스의 연인이기도 했던 아렌트가 예루살렘 재판정에서 보게 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은 너무 평범했다.

죄 없는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였으리라고 전혀 상상되지 않는 중년 남성, 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었던 것이다. 이웃집 아저씨 인상의 아이히만은 재판 중 거듭 "나는 (나치의) 명령을 따랐고, (친위대 중령으로서) 명령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며 죄가 없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히틀러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받들었고 전범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른 게 악행으로 점철된 아이히만의 삶이었다.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이히만의 재판 전 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악(惡)의 평범성'을 경계했다. 악이란 결코 뿔이 달려 있거나 어떤 악취를 풍기며 인간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 잠복해 있다가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생활 주변에 숨죽이고 있는 악은 정의롭지 못한 조직의 논리나 왜곡된 시대 흐름을 타고 혹은 멍하게 생각 없이 어떤 것들을 따르거나 방조하는 틈을 타서 우리에게 스며들고 먼 훗날 치명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각료 후보자들이 걸어온 민낯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을 제기한 아렌트를 떠올렸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일부 장관 후보자들을 결코 악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성을 넘어서서 과연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성을 지니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전관예우, 고액 연봉, 부동산 투기, 자녀 병역면제, 불법 증여, 위장 전입, 논문 베끼기 등 공인(公人)으로서는 있으면 안 될 결격 사유들을 너무 많이 갖고도 공직에 나서겠다고 이력서를 디밀었다. 국가 혹은 정부 유관 기관에서 녹을 받다가 퇴임해서 월 억대 혹은 수천만 원씩 월급을 주는 로펌에 취업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공사를 구분한다면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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