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낙동면 유영일(53)'현남순(51) 씨 부부. 이들 부부는 일 년 내내 비닐하우스 속에서 지내는 농사꾼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살아가는 방법은 남다르다.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농민은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운 이웃 돌보는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로 소문이 자자하다.
남을 돕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서 욕도 많이 먹었다. "농사지어 빠듯하게 생활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마치 큰 부자인 것처럼 남에게 막 퍼 주느냐"고 수군거렸다. 부인 현남순 씨는 "나쁜 짓 하고 욕먹는다면 당연하겠지만,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 조금 나눠줬다고 손가락질당하는 경우는 견디기 어렵더라"고 한다. 이 부부는 기분이 상해 그만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욕 하려면 해라.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겠지"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기로 맘먹었다는 것.
부부는 건강이 재산이다. 일 년 중 거의 10개월은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그곳에서 수박, 오이, 호박 농사를 짓는다. 부부는 비닐하우스 한 동에다 별도로 '나눔의 채소'를 재배한다. 돈으로 따지자면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 연간 수백만원 상당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부부는 개의치 않는다. "건강할 때 열심히 일해서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살아야지, 힘 떨어지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무덤덤한 표정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부부는 봄 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4대강 사업에 밀려 몇 년 동안 인근 동네로 이전했던 비닐하우스를 올해부터 원상복구 하고 있다. 예상보다 비닐하우스 설치작업이 늦어져 걱정이다. 유 씨는 "하루빨리 수박 모종을 넣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올 농사를 망칠 수 있다"고 한다.
부부의 '나눔과 베풂'의 삶은 우연하게 시작했다. 현 씨가 낙동면 생활개선회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이웃사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면서 주변 자투리땅에 배추와 고추씨앗을 뿌려두었더니 가을에 김장용으로 이웃에 나누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수확을 했다. 현 씨는 "상주지역 불우시설에 김장용 배추를 배달하면서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느꼈다"고 한다. 유 씨도 "우리가 조금 더 수고하면 어려운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고 한다. 부부는 이듬해부터 '나눔을 위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수박농사를 짓는 19동의 비닐하우스 중 한 동은 아예 '이웃 나눔용' 작목을 재배했다.
몇 년 동안 남몰래 '이웃돕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이 됐다. 5년 전부터는 아예 김장을 담가서 중증장애인시설과 효도원, 냉림동 사회복지센터 등 복지시설과 낙동면 지역 홀몸노인을 위해 면사무소까지 전달한다. 동네 주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매년 12월 초 김장철이 되면 낙동면사무소 생활개선회원들과 냉림동 사회복지센터 봉사단원들이 함께 어울려 공동김장을 하면서 '동네잔치'를 연다. 지난해에는 직접 농사 지은 2천여 포기의 배추와 미리 빻아 둔 고춧가루 50근으로 김장을 담가 하늘지기, 효도마을, 상주시 종합사회복지회관 등 복지시설 3곳과 홀몸노인, 장애인 가정 70가구에 선물했다. 고추, 마늘, 젓갈 등 양념류도 준비했다. 5년째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 설날엔 쌀 한 가마로 떡국을 만들었다. 집 앞마당에 대형 가마솥을 걸고 떡국을 끓여 낙동면 나각산에 해맞이객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기도 했다. 봄이 되면 고추장을 담가 나눠주기를 한다. 부부의 '주는 기쁨'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충남 천안이 친정인 현 씨는 "어릴 때 친정어머니(손순근 씨'2년 전 별세)는 거지가 와도 반드시 상을 차려서 밥을 주셨다"며 "그 베푸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고 한다. 유 씨도 어머니(박영자 씨'74)께서 매년 봄에 고추장을 담가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부부의 선행은 유관표(18'상주 상산전자고 2년)와 정열(12'상주 낙동초교 5년) 등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대물림되고 있다. 네 가족은 취재 당일 대보름(24일)날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물할 말린 호박을 포장하고 있었다. 취재하는 동안 부부는 "뭐 별로 자랑할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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