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가 쓴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에 한 구절 덧붙이면 어떨까? '즐기는 사람은 즐김을 다시 앎으로 승화시키기를 갈구한다.'
'수집'(蒐集)이 그렇다. 사람들은 우표'화폐'골동품 등 다양한 물건을 모은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취미'(趣味)다. 그런데 취미를 넘어 '연구'(硏究)를 갈구하는 수집가들도 있다. 수집에 긴 시간과 진득한 노력을 쏟다 보면 수집 대상의 숨은 체계가 보이고, 사회에 적용할 만한 의미와 교훈이 이끌려 나온단다. 이러한 즐거움을 미덕으로 삼는 수집가들이 있다.
전세계 단 2권 몽골어 성경 등 희귀본도 소장
◆40여년간 각국 성경 수집…대구가톨릭대 김동소 교수
세계 800여 개 언어로 된 성경을 수집한 사람이 있다. 김동소(70) 대구가톨릭대 한국어문학부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경북대 사범대 재학 시절인 40여 년 전부터 성경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이미 영어를 비롯해 라틴어'그리스어'독일어'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성경을 접했다.
"우리말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외국어 성경을 찾아 보완했습니다. 그러다 서로 다른 해석을 발견하면 '왜?'라는 호기심에 또 다른 언어로 된 성경을 찾아 읽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해 비교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은 중요한 연구자료가 됐다. "학계에서는 세계 언어가 8천 개에서 1만 개 정도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언어를 어느 출판물보다 많이 담아낸 인류 언어의 보고입니다. 약 2천500개 언어로 번역돼 있다고 합니다.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로 된 성경을 수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김 교수의 연구 인생에 성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가 됐다. 김 교수는 해외에 가면 가장 먼저 그 지역에서 출판된 성경을 구하러 다닌다. 가장 큰 수확(?)을 거둔 기억은 1980년대 인도 뉴델리의 한 대학에서 근무했을 때다. 인도 성서공회에 가서 성경을 자동차 한 대 가득 싣고 왔단다. 국내에서는 '아마존' 등 온라인 중고서점을 샅샅이 뒤지고, 해외로 떠나는 지인이 있으면 책 심부름을 부탁한단다.
사진만 봐도 명칭·제원 척… 무기 변천사 강좌도
◆전쟁사·탱크 연구 전념…대구 신피부과 신기식 원장
김 교수는 수집에 사연이 깃든 성경 세 권을 소개했다. 하나는 몽골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이다. 러시아에서 출판된 것으로 전 세계에 단 두 권 남은 것이란다. 이 성경은 자칫 불타 없어질 뻔했다. 1960년대 독일에는 '도서관에 동양학 관련 책을 보관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며 대학생들이 책장에서 책을 빼내 불태우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때 흘러나온 것을 독일의 한 사업가가 한국에 사업차 왔다가 경매에 부치려 했단다. 그러자 알고 지내던 한 독일 교수가 주선을 해줘 1987년쯤 20만원에 구했다는 것. "만약 경매에 부쳐졌다면 그 10배 이상의 값이 매겨졌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됐죠."
또 하나는 예수가 쓰던 언어인 '아람어'로 쓰인 성경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한 이스라엘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좋은 연구하라"며 보내준 것이란다. 마지막 한 권은 소장하고 있는 성경 중 가장 오래전에 출판된 것이다. 1786년 체코에서 출판된 로마어 고트 문자로 된 성경이다.
아직 애타게 찾는 성경도 많다. "동남아시아 파푸아뉴기니 섬에서 출판된 성경들을 가장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섬에 1천 개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을 거라는 얘기죠." 또 하나는 북한에서 출판한 성경이다. 우리나라에는 표준어 외에 제주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이 있는데 하나 더 추가하면 북한 방언이 담긴 성경이라는 것.
그래서 김 교수는 대구 방언이 담긴 성경을 펴내고 싶다고 했다. 성경만큼 언어를 제대로 보존하고 전승하는 매체가 없다는 것. 오랫동안 성경 수집을 하며 얻은 힌트다.
◆성경 속 언어 연구에 평생 쏟을 것
성경 수집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언어 연구다. 성경 수집가 이전에 언어학자가 김 교수의 '업'(業)이기 때문. 김 교수는 지난해 만주어 성경을 연구한 저서 '만주어 마태오 복음 연구'를 펴냈다. 18세기 청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한 프랑스 출신 루이 드 푸와로 신부가 번역한 성경을 연구한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으로 후속작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이 만주어 성경도 김 교수가 1982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있을 때 마이크로필름으로 구한 희귀본이다. "만주어 성경에는 희귀 언어가 된 만주어의 독특한 어휘나 표현법이 그대로 담겨 있어 연구 가치가 큽니다. 또 개인적으로 루이 드 푸와로 신부의 정성어린 번역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죽으면 만나서 '당신이 번역한 성경을 내가 구해 연구했다'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김 교수는 "성경 수집과 성경에 담긴 언어에 대한 연구에 평생을 쏟겠다"고 했다. "성경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과 민족의 문화가 담깁니다. 바로 이 부분을 발견해 연구하는 것이 매력입니다."
◆전쟁사 연구하는 의사
전쟁사와 전차(탱크)에 푹 빠진 의사가 있다. 어린 시절 호기심에 전쟁사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고, 전차 프라모델을 수집했단다. 돌이켜 보면 '전쟁놀이 좋아하는 흔한 사내아이들 취미'는 아니었단다. 50대가 된 지금도 사진만 보면 어느 나라 전차인지 명칭은 물론 제원까지 꿰뚫을 정도다. 틈틈이 시간을 내 전쟁사와 군사무기 변천사 관련 강좌에 나서기도 한다. 대구 신피부과의원 신기식(53) 원장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지금 대구역 인근에 있던 '본영당 서점'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책을 고를 때 저도 이런저런 책 구경을 했죠. 그런데 이상한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전쟁사 책이었는데,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 앞에 히틀러가 서 있는 겁니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했다'고 하셨어요. 그 묘한 대비가 강렬했나 봅니다. 그때부터 저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아무런 까닭 없이 모두 전쟁사에 집중됐습니다."
신 원장은 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해외에 갈 때마다 전쟁박물관'기념관에 들러 책이나 사진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 "유럽 여러 국가들은 1'2차 세계대전 때 국가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의미와 교훈을 관련 기념시설이나 자료에 잘 정리해놓았어요. 다시는 전쟁의 처참함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담겨 있죠."
◆지상전의 왕자 '전차' 마니아
신 원장은 전쟁사 외에도 다양한 군사무기 관련 자료를 모은다. 그런데 유독 전차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전차 없이 지난 현대 전쟁사를 얘기할 수 없고, 지금도 군 전력과 전략을 논할 수 없다는 것. 어릴 적 독일어와 프랑스어 공부에 빠진 계기도 전차 이름을 알기 위해서였단다. "전차를 '지상전의 왕자'라고 합니다. 지난 세기에 처음 나타나 그랬거니와 첨단 무기가 많이 개발된 지금도 전차는 가장 강력한 지상병기입니다. 또 첨단 기술이 집약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국방력과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16년 영국이 '물 저장고'(tank'탱크)라는 별칭을 붙여 개발한 것이 최초의 전차다. 1차 세계대전 말에는 무한궤도를 가진 차체와 회전포탑으로 구성된 전차의 전형이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이후 독일의 타이거 전차, 구 소련의 T34 전차 등 기술적으로 혁신을 거듭한 전차가 강대국 사이에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한국전쟁 초기에 국군이 북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린 주된 이유가 바로 전차 때문입니다. 구 소련의 T34 전차가 북한군 주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국군이 북한군보다 전차 전력이 월등히 우세합니다. 우리나라는 K1'K1A1'K2 등 세계 10위 안에 드는 수준의 전차를 개발, 수출도 할 정도가 됐어요."
◆전쟁사 속 교훈은 현재를 사는 지혜
신 원장은 "러시아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현대 전쟁사에서 가장 큰 교훈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승승장구하다가 처음으로 패배하고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전환점이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독일군 33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이들 중 살아서 독일 땅을 밟은 사람은 5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때 독일군이 승리했다면 지금 세계 구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죠."
신 원장은 "전쟁사에 대한 탐구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아직 정전이 아닌 휴전 상황에 있는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공부란다. 전쟁 분야만큼은 직접 경험하기보다 다른 국가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 역사 교육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란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죠. '뮌헨 회담'에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가 독일의 히틀러를 만났습니다. '더 이상 다른 국가를 침략하지 말라'고 하자 히틀러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방심했죠. 불과 2년 뒤인 1940년 독일의 폭격으로 영국 런던은 불바다가 됐고, 수천 명의 시민이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에 절실한 교훈이 아닐까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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