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대학 극회의 중흥이 그립다

지난해 9월, 기자 생활 10년 만에 문화부 연극담당 기자가 됐다. 캠퍼스 시절, 아련한 극회의 기억이 문화부 생활에 더 빨리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994년과 95년 '성균극회'(성균관대 극예술연구회)라는 공간은 대학 생활 전부나 다름없었다. 재수 시절 최불암 주연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작)이라는 연극 한 편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신입생과 2학년 시절을 연극반에서 보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연극반의 기억은 잊힌 지 오래였다. 하지만, 문화부 연극 담당 기자 7개월 만에 그 아련한 추억이 다시 온몸을 휘감고 있다. 영남대 천마극단의 선'후배 합동공연 '우리 읍내'(김미정 연출)를 취재나갔다가 '우정 출연'을 약속해버린 것.

뒤늦게 합류한 탓에 짧은 대사 두 마디(죽은 사람 역)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역의 명배우 류강국 씨는 첫 리딩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서로에게 부담 주지 말고 그만둡시다'라고 엄포를 놓았으며, 김미정 연출자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목소리도 좋은데 도저히 기본이 안 되네요'라며 직언(直言)을 했다. 이에 질쏘냐.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9일 기어이 무대에 올랐다. 모르겠다. 천마극단 선'후배들과 연출자가 어떻게 봤는지. 누(累)가 안 되었길 바랄 뿐이다.

개인적인 소회는 잠시 뒤로 하고, 지역 대학 극단의 아름다운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46년 역사(1968년에 시작)의 천마극단은 1996년 이후 17년 만에 선·후배 합동공연을 성황리에 끝냈다. 29, 30일 3회 공연은 전석이 매진됐다. 천마극단 선'후배들은 40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읍내'라는 아름다운 연극으로 하나가 됐다. 이순(60세)을 넘은 선배가 앞에서 끌어주고, 지천명(50세)의 노련한 지역 명배우들이 아들'딸 같은 어린 후배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1970, 80년대 지역의 대학극은 영남대를 비롯해 경북대·계명대가 주축을 이뤘다. 특히 경북대는 이창동 감독이 있던 시절, 중흥기를 이뤘다. 정치 격동기에 이데올로기의 색채가 선명한 연극을 하다, 구속된 연극반 대학생들도 많았다. 계명대 극회 역시 지역 연극'공연계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선배들(이상원 극단 뉴컴퍼니 감독'이철우 파워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이 많다.

이번 천마극단의 아름답고 성공적인 선'후배 합동공연이 경북대·계명대 극회에도 큰 자극이 되어, 다시 한 번 대학 극회 중흥의 서막이 열리기를 바란다. 디지털 시대라서 더 그립다. 아날로그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삶의 에너지와 깊은 감동이.

권성훈(문화부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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