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가 노랗다. 사전을 찾아보면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아니하다'로 나온다. 그런데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을 갖춘다는 것은 주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습일테고 싹수 노란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관심 없는 영역일 거다. 적어도 싹수 노랗게 커 온 내가 그러니까.
싹수 노란 부류가 소비하는 문화는 B급 문화로 불린다. 요즘에야 문화라는 말을 붙이지만 선데이서울을 탐독하거나 다락방에 쭈그리고 앉아 '빽판'을 뒤지는 행동을 문화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일련의 소비 경향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고 그저 패거리끼리 묘한 쾌감을 공유하는 정도였다.
1990년대 들어서 한국 문화계는 다양한 담론이 등장한다. 2000년대 들어 대중문화 비평과 정치 평론이 뒤를 이었다. 이들 담론이 등장하면서 B급 문화는 키치 또는 컬트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생소하지만 직설적이며 주류보다 비주류를 지향하는 B급 문화는 독립영화와 인디음악 그리고 PC통신과 인터넷상에서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진화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B급 문화가 유의미한 텍스트로 인정받는 일은 요원했고 싸구려며 천박한 것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대중들의 문화 소비 형태에는 B급 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은 교조적 마니아 집단을 형성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B급 문화 소비의 정점을 찍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현상은 팟캐스트 열풍이다. 2009년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팟캐스트는 2011년 '나는 꼼수다'의 등장과 함께 한국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등극한다. 신랄한 정치 풍자와 B급이라고밖에 표현하기 힘든 시시덕거림은 기존 미디어의 경직성에 익숙해 있던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통쾌했다. 회당 200만 건 이상의 경이적인 다운로드 기록은 아이튠스 차트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주요 외신들이 한국 팟캐스트 현상을 취재하기도 했다.
팟캐스트 열풍은 SNS와 함께 개인미디어 시대를 본격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미 기존 미디어에 비빌 언덕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B급 콘텐츠 생산자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홍보와 유통을 기획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엄숙한 가치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B급 문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문화적 다변성 정도를 부여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 당장 팟캐스트 방송을 개국하고 싹수 노란 대열에 합류할 의지가 있는가. 돈 한 푼 없이 스마트폰 달랑 하나만으로도 가능하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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