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금오산 쇠말뚝

뽑아야 한다. 19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이 신음하고 있다.

금오산(해발 976m) 정상에 있는 3개의 철탑, 거인상의 정수리와 목을 관통하고 있는 이 철탑은 1953년 11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군의 통신기지 건설로 인해 설치된 것이다.

그동안 금오산은 많이 아팠다. 미군 시설에 이어 전력과 방송, 통신사의 철탑이 여기저기 들어서서 금오산을 아프게 만들었다. 금오산을 아프게 만든 미군 시설은 1991년부터 20년이 넘게 이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구미시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고 다녀왔던 현월봉은 사실상 철탑 10m 아래에 있어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구미시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필자에게 금오산 정상의 미군 시설은 말 그대로 '앓던 이'와 같았다. 금오산 정상을 바라볼 때마다 금오산이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꾸짖는 듯했다.

해결해야 했다.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금오산 정상을 돌려받기 위해 수년에 걸쳐 미군과 10차례에 걸친 협상과 요구를 계속했고,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11년 3월 31일 드디어 구미시는 미군 측과 금오산 정상 미군 통신기지 반환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하고, 정상을 포함한 일대 5천666㎡를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현재 금오산 정상에는 시비 30억원을 들여 미군 건물 2동과 철조망 등을 철거하고, 아래쪽 건물은 리모델링을 한 뒤 주변 정비작업을 하는 등 올 연말까지 완성을 목표로 자연 친화형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 추진되고 있다. 또한 예쁘게 단장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상을 완전히 개방해 우리 시민들의 품에 금오산을 온전히 돌려 드릴 예정이다.

필자는 금오산 정상을 완전하게 돌려받을 때까지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모든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언가 부족하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고자 일제가 자행했던 끔찍한 쇠말뚝 박기를 바라보는 심정과 금오산 정상에 앙상하게 서 있는 미군 통신철탑을 바라보는 우리 시민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정상 반환에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시민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는 하나의 과제가 더 남아있다. 바로 철탑 철거다.

그렇다. 자존심 회복이다. 우리의 산을 우리의 손으로 지키고 가꾸는 것은 구미 시민의 자존심 문제다. 새삼스럽게 민족의 정기를 이야기하고, 미신의 잣대를 들이대자는 게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 우리의 산을 보호하자는 얘기다.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는 바로 구미 금오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먹고살기도 바쁜 시기에 우리는 한발 앞서 미래를 이야기했다. 전국 최초로 금오산에서 시작된 자연보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우리의 마음속에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금오산은 대한민국 자연보호운동의 요람이자 메카인 것이다. 이러한 곳의 정상에 미군 통신철탑을 남겨둔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인가?

2명의 대통령 배출,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 도시, 대한민국 무역수지 흑자의 79%를 담당하는 '한국 경제의 심장' 구미를 대표하는 산이자, 자연보호운동의 요람인 금오산의 정상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미군 통신철탑은 이제는 치료해야 할 과거의 아픈 상처다.

완연한 봄이 왔다. 지난해 2.7㎞에 달하는 금오산 올레길이 완성되었고, 하루 평균 5천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오산 올레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을 포근히 내려다보고 있는 금오산 거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길 바라는 것은 우리 시민, 더 나아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일 것이다.

구미의 상징 '삼족오'가 자유로이 구미의 창공을 날다가 금오산의 정상에 둥지를 틀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두는 것, 철탑 철거는 그 아름다운 설화의 완성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의무이다. 또한 민족정기 회복은 물론 구미시민들의 자긍심 회복이다.

남유진/구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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