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년차 대학원생인 김모(31'대구 달서구 이곡동) 씨는 3년 전 대학원 진학과 함께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김 씨의 한 달 수입은 연구 보조원, 조교 활동으로 얻는 30만~40만원이 전부다. 용돈과 한 학기에 200만원 가까이하는 등록금 마련에 돈을 보태고 나면 데이트 비용은 여자친구 부담이 됐다. 김 씨는 "연애, 결혼은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포기해야 하는 것들만 늘어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 압박으로 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다는 뜻의 '삼포(三抛)세대'가 20, 30대 청년들의 수식어가 됐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 30대 성인남녀 2천192명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 중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라는 설문 조사에 42.3%가 '있다'라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이 삼포세대인 셈이다. 삼포세대가 된 이유로는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53.5%,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웬만큼 돈을 모아도 힘들어서'(42.1%), '집안에 가진 돈이 적어서'(36.4%)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늦어지는 취업에 치솟는 집값, 결혼비용, 육아비용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청년들에게 연애'결혼'출산은 남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
취업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해도 삼포세대의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결혼비용과 집값은 삼포세대가 가정을 꾸리는 데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통계청이 분석한 '2012년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의 40.3%, 30대의 45.6%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다.
지난해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이모(30'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최근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선언했다. 이 씨의 한 달 월급은 150여만원.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었다고 안도했지만 이 수입으로는 집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살인적인 육아비용도 이 씨에겐 부담이다. 이 씨는 "결혼해서 아이와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평균 초혼 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여자는 20대 중'후반, 남자는 20대 후반이 결혼적령기라는 사회적 통념은 깨진 지 오래다. 통계청이 대구지역 평균 초혼연령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1년 남성이 29.4세, 여성은 26.8세였지만 10년 후 2011년엔 각각 31.8세, 29.6세로 평균 3년이 뒤로 미뤄졌다.
연애와 결혼이 늦춰지면서 엄마들의 고령화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부담에 쫓기는 20, 30대 여성들에게 출산은 사치다.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만 3억원 가까이 드는 현실은 출산을 자꾸 주저하게 만든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 첫 출산 여성의 평균 연령은 2001년 28.0세에서 2011년 30.4세로 늘어났다. 연애와 결혼의 출발선과 함께 첫 출산 연령도 미뤄지고 있는 것. 결혼 3년차 주부 곽모(32'대구 동구 방촌동) 씨는 "육아 비용과 갚지 못한 대출금 부담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며 "어느 정도 형편이 괜찮아지고 나면 아이를 낳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구 청년유니온 서영훈 위원장은 "'목숨까지 포기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청년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기반이 무너져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사회의 첫 걸음인 일자리 문제부터 정부와 기업 청년이 힘을 모아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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