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1.재출발

이란에서 터키까지 다시 걷는 신라의 길

참 먼 길을 달려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실크로드 여행은 모진 고행을 자초하는 구도자의 길이다. 그곳은 가도 가도 사막뿐. 그러나 21세기 실크로드에는 문명의 혜택으로 낙타 대신 말끔한 포장도로가 놓이고 자동차가 달린다. 그 길 옆 모래 언덕 속에는 명멸한 수많은 문명의 흔적과 그 역사를 이끌어 온 선인들이 미라로 잠들어 있다. 긴 시간을 들여 척박한 모래땅을 답사하는 것은 마음속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조금은 쉬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알기 위해서이다.

실크로드 탐사를 3개년 계획으로 세우고 1차 연도에는 중국 시안에서 카슈가르까지 주파했다. 그 기록물은 본지를 통해 소개됐다. 중국 편은 1회 멀고먼 사막 길에서부터 23회 구도자의 땅까지였다. 2차 연도에는 중앙아시아를 찾았다. 신문연재는 1회 두 번째 대장정에부터 22회 실크로드 여정까지 게재했다. 마지막 남은 3분의 1은 이란과 터키를 통해 실크로드의 종점이자 출발점인 이스탄불까지 가는 길이다. 옛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약 1만3천㎞를 종주하는 것이다.

이제 잠시, 달려온 지난 길을 뒤돌아 점검해본다. 1차 연도는 시안 대안탑 앞을 출발, 진시황 병마용을 보고 난주 병령사에서 석굴암 부처님의 미소를 만났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가욕관 성루에서 서역을 바라보고 세계적 돈황의 막고굴에서 혜초 스님의 자취를 찾았다. 하늘과 모래 어디가 끝인지 명사산에서는 사막의 사파이어 월아천을 만났다. 유목민의 기를 느낀 바리쿤 초원을 거쳐 성큼 서역 땅으로 들어섰다. 황성 옛터 같은 고창왕국과 교하고성을 걸으며 현장법사의 흔적을 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의 도시라는 명성을 자랑하는 투르판에서는 중국 최고의 포도로 더위를 식혔다. 쿠처의 키질 석굴에서 벽화 속 신라보검의 형상을 보았다. 모래 폭풍을 만나고 석양에 길을 잃기도 하며 도착한 카슈가르의 바자르는 인종전시장이었다. 그들의 성지인 천산 천지에 오른 후 중국 일정을 마무리했다.

중앙아시아 지역 실크로드 답사를 2차 연도로 잡았다. 먼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도시 히바에서 시작했다. 노예시장으로 유명했던 히바성과 주마 모스크와 미완성 미너렛을 만났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부하라는 발길 닿는 곳마다 2천500년 역사의 숨결을 느꼈다. 칭기즈칸에게 점령당했던 칼안 미너렛을 방문했던 8월 초, 낮 최고기온은 45℃, 열사병을 두려워했다. 티무르의 권력을 느끼게 하는 악사라이 궁전의 흔적과 무덤, 구르 아미르를 보며 지금은 흙으로 돌아간 그의 허욕을 생각한다. 아! 사마르칸트, 왕족의 벽화에서 발견한 신라 사신의 모습은 가슴을 뛰게 했다. 고선지 장군의 탈라스 전쟁터를 찾았고 키르기스스탄의 청정한 자연공원을 느꼈고 신비의 이식쿨 호수에서 배를 탔다. 스키타이 황금문화를 신라에 전해준 황금인간도 만났다.

세 번째 여정은 이란을 거쳐 터키까지 갈 것이다. 옛날 비단을 주 교역품으로 대륙을 오가며 문명을 전달한 대상들의 길을 따라간다. 특히 이란에서는 역사유적지를 중심으로 찾아본다. 터키도 세계적인 관광국이어서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실크로드와 관련해서 방문지를 정했다. 세계적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의 석조물은 페르시아 제국의 융성했던 한때를 보여준다. 조로아스트교의 장례지인 침묵의 탑은 인간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야즈드시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풍요로운 물을 생산하는 수리시설이 존재한다. 천 년 전 격구를 신라에 전해 준 이스파한의 이맘 광장과 야경으로 유명한 시오세 다리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터키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돌마바르체 궁전, 에페소 유적 등 역사유적지의 보고이다. 실크로드 종점 동로마제국의 길을 따라가면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사원에 이른다. 실크로드 대장정은 또 다른 신비를 찾아서 이렇게 시작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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