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텔촌 안에 갇힌 초등학교, 이름 무색한 '학교정화구역'

동구 신암4동 덕성초교 일대, 교문 앞까지 숙박시설 밀집

대구 동구 신암4동 덕성초등학교 정문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거리에 모텔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동구 신암4동 덕성초등학교 정문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거리에 모텔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9일 오후 3시쯤 대구 동구 신암동 덕성초등학교 정문 앞.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2~5명씩 짝을 지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4, 5학년인 여학생 5명은 덕성초교 정문을 나와 남쪽 방향으로 나있는 내리막길 70여m를 걸어갔다. 폭 10여m의 내리막길 양 옆으로 '모텔 000' 등 3, 4층 규모의 여관과 여인숙이 줄지어 서 있다. 이 골목길 바닥에는 차량 운전자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약 3m 크기의'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머리 위 노란색 바탕의 안내판에도'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청소년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학교정화구역 내에서 여관과 모텔 등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동네주민 김모(57) 씨는"오후 5시만 넘어서면 학생들이 오가는데도 호객꾼들이 도로가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다"며"경찰과 구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문제를 제기해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이모(55'여) 씨는"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여관 근처에서 호객꾼들이 차를 막고 붙잡아 동네 주민한테 무슨 호객행위냐며 야단친 적이 있다"며"아들과 딸이 중'고교 때 교복은 입은 채로 함께 집으로 가고 있는데 호객꾼들이 쉬었다 가라고 팔을 붙잡기도 했다"고 전했다.

학교보건법상 학교 경계선 200m 안에는 여관과 모텔 등 유해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지만 학교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있었던 업소들을 없애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정화구역 내 불법 업소에 대한 조치 권한을 갖고 있지만, 업주들의 반발로 이전이나 폐쇄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특히 역 주변의 여관'여인숙 집결지는 50, 60대 여성 호객꾼들이 손님을 끌어와 수수료를 받는다. 경찰이 호객꾼을 단속해도 벌금을 내고 이내 풀려나거나 다른 호객꾼들이 대신 나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호객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현재 대구 동구 신암4동의 전체 숙박업소는 65곳이고 덕성초교 주위에만 50여 개의 여관과 모텔이 밀집해 있다.

대구 동구청 위생과 관계자는"정화구역 안에 여관 등이 몰려 있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교육청과 경찰 등과 연계해 합동 단속을 벌이지만 그때뿐이다"고 했다.

대구 동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1984년 덕성초교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여관 등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던 지역이라 무작정 영업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지도'단속권도 없는 상태여서 정화구역 내 여관들을 규제할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정박은자 대구여성인권센터 힘내 상담소 부소장은"여관과 모텔뿐만 아니라 안마방이나 키스방 같은 신'변종 업소가 주택'학원가에 파고들고 있는 추세지만 학교보건법상 규제할 수 없는 자유업으로 허가를 얻기 때문에 정화구역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가 힘들다"며"지자체와 경찰, 교육청 등이 근절 의지를 갖고 이들 업소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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